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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서울 경전철 건설,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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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러스트=강일구]

서울시가 9개 경전철 노선과 전철 연장 1개 노선 건설을 추진 중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 37%가 지하철 서비스 소외지역”이라며 “효율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경전철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해 시 재정만 악화시킬 것”이란 반대 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대중교통 소외지역 없애 시민 불편 줄여야

김기혁
계명대 교수
대한교통학회 회장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향상에 따라 조만간 자동차 2000만 대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대수 증가에 따라 교통사고 증가와 도시교통 혼잡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 에너지 소비량 급증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국가 정책을 지속가능한 저탄소 녹색교통 위주로 전환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또한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고령자 및 교통약자의 통행권 보장을 위한 대중교통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의 경우는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시켜 자가용 이용을 억제하는 정책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시가 언제까지 자가용 승용차 소통을 위해 도로를 확장하고 많은 비용을 투자해 가면서 주차장을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서울시 같은 거대도시에서는 과감하게 교통정책 방향을 대중교통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물론 물류 수송을 위한 차량 소통을 위해선 순환형의 도시고속도로 건설이, 상습정체 해소를 위해선 우회도로 건설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대도시의 대중교통수단으로는 버스와 철도를 들 수 있다. 버스는 접근성이 높고 노선에 융통성이 있는 반면 대중교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통행시간 절감과 정시성(定時性) 확보가 제한적이다. 일부 구간의 버스전용차로 운영만으로는 통행시간 절감 등을 보장하기 어렵다. 철도 시스템은 공사에 많은 비용이 드는 데 반해 통행시간 절감 등이 가능해 수요가 많은 고밀도의 도시에서 바람직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서울시에서 계획 중인 경전철은 지하철 시스템이다. 다양한 경전철 시스템 가운데 지하철은 타 도시에서 건설되고 있는 고가(高架) 시스템처럼 민원이 제기되거나 도시 미관을 해치는 일은 없으나 공사비가 비싸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선 충분한 수요가 보장돼야 한다.

 이런 문제는 시(市) 재정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경우 경전철 계획지역의 인구밀도와 규모를 볼 때 용인·의정부 경전철과 달리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무료 시스템 운영으로 버스와의 환승연계 시스템을 원활히 구축하면 많은 환승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주요 대상 지역이 지하철 이용이 불편해 상대적으로 교통 편의를 누리지 못했던 관악구 난곡·신림 등으로 해당 지역 시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경전철 건설을 단순한 토목사업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진정한 복지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편리한 환승체계를 구축하려면 지선버스 노선체계를 정비하고, 계획단계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설치와 배차간격 등을 신중히 검토해 환승과 접근, 대기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불편함을 없애야 한다. 시민들에게 편리한 환승연계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자연적으로 교통수요가 창출될 수 있고, 시 재정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도시철도사업 역시 경전철 도입으로 인한 노면 교통의 혼잡비용 감소 등 간접 편익까지 감안할 때 투자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함께 발표된 동일요금제는 이용자 부담을 줄이고 수요창출에 많은 도움이 되는 제도로서 향후 민간운영자에게도 유리하고 교통복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기혁 계명대 교수 대한교통학회 회장

시 부채 키우고 혈세 낭비할 가능성 크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

서울시가 밝힌 경전철 사업의 총 사업비는 국비와 시비를 합친 정부 재정 50%, 민간 자본 50%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서울시 부채가 약 27조원으로 악화된 재무 구조 속에서 민간 자본까지 유치해 수익을 시 재정으로 보전해준다면 서울시 부채만 증가돼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점이다. 서울시에서는 국비와 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재원 조달 계획 없이 성급하게 발표만 한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시 경전철 건설은 민자사업으로까지 추진해야 할 만큼 시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과거 실패한 민자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민간 사업자와 협상 시 사업수익률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수요 예측 책임 소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용 요금 또한 기존 도시철도와 동일한 요금제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요금 차액 보장이라는 리스크 분담 외에도 민간이 수용할 수 있는 수익률 보장은 불가피할 것이다. 결국 급하지 않은 사업을, 그것도 민자사업 방식으로 추진하게 됨으로써 재정 낭비는 물론, 민간 사업자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 수도 있다.

 또한 민자사업은 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듯 민간 자본의 창의와 효율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재정사업에 비해서 품질은 높으면서 사용 비용은 저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민자사업은 막대한 정부 재정까지 지원해줌에도 오히려 재정사업에 따른 이용 요금보다 더욱 비싸게 운영되고 있다. 이번 서울시 경전철 사업에 정부 재정을 50%나 투입시키면서 오히려 기존 공공 재정 철도와 요금을 같게 한다면 굳이 민자사업으로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서울시는 총 사업비 8조5533억원 중 4조2273억원을 정부 재정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역으로 서울시가 밝힌 10개 노선 계획의 절반 정도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서 해야 한다면 민간 사업자들에게 수익까지 안겨줘 가면서 추진할 필요가 없다. 재정 여건 속에서 우선 한두 곳을 추진하고 난 뒤 사후 평가를 통해 그 효과와 문제를 충분히 점검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효과가 검증됐을 때 재정 여건에 따라 순차적으로 추진하면 된다. 그것이 서울시의 재정 낭비와 시민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이번 경전철 사업은 대형 국책사업으로 사업 추진에 있어서 충분한 검토와 시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기존 민자사업의 경우 추진 단계에서 관련 자료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 결과 사업이 완료된 후 수요 예측 부실, 과도한 수익 보장, 민간 사업자에 대한 특혜 등의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서울시가 계획 발표를 통해 “타당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울연구원에 의뢰했던 용역보고서 원본, 타당성 재검증 및 수요 예측 결과, 구체적 재원 조달 계획 등부터 공개해 타당성 여부를 가려야 한다. 나아가 경전철 사업 추진으로 타격을 받을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에 대한 대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사회적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

 서울시 경전철 사업은 결국 부채 증가와 민간 사업자의 수익을 위해 혈세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이 이 사업을 추진한다면 지방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