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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론-새 정부에 바란다] 上 . 경제 키워야 복지도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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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는 25일(화)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산적해 있는 현안 중 핵심적인 것을 추려 3회에 걸친 기획 시론으로 중지를 모으고자 한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 후 가장 먼저 부닥치게 될 현실 경제문제는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국내 경기다. 지금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건은 매우 나쁘다.

국가신용등급의 하락 가능성과 국제유가의 급등, 국내 주식시장의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 등이 한국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노사관계 꼬여 기업활동 위축

지금 우리 경제에서 실질금리가 영에 가깝고 은행에 자금이 넘쳐도 기업투자가 침체돼 있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생산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금리나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 기업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기업환경 개선과 사업 위험 감소를 통해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성장 잠재력의 향상을 위해서도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불안한 노사관계다.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힘의 불균형'을 깨는 것이 아니라 공익의 수호자로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것이 돼야 한다. 노사관계를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안정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새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 형평과 복지의 증진을 약속했다.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달성하는가다. 성장과 복지, 효율과 형평 사이에 불가피한 맞교환관계(trade off)가 존재한다는 것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경제상식이다.

깨끗한 환경이나 좋은 교육제도, 사회 기반시설이나 유능한 정부조직 같은 것도 모두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복지제도.환경보호.교육제도.기반시설들이 잘 돼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도 진정한 의미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개발도상국이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절대 빈곤이 남아 있다. 그만큼 경제가 더 성장해야 한다. 소득 1만달러의 복지국가는 아직 존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복지와 형평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비용을 지불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정부의 능력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의약분업을 통해 얻은 복지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 우리가 치른 대가가 얼마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새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성장과 복지의 조화 노력이 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

새 정부는 스스로를 '참여정부'로 명명해 국민의 국정참여 폭을 넓히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국민의 뜻은 받들되 그것을 어떻게 달성하는가는 전적으로 전문성과 과학의 영역이다.

*** 여론 휘둘려 정책실행 말아야

경제문제는 하고 싶은 것 다 못하고, 갖고 싶은 것 다 못가진다는 제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경제의 운영은 기강과 절제가 기본원리다.

국민참여를 명분으로 경제정책에 운동권 논리와 비전문적 처방, 이익집단의 요구가 여과없이 반영되면 그것은 기강해이와 무절제로 이어져 결국 우리 경제를 망치게 될 것이다.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정보통신 혁명과 세계경제의 통합 추세는 한국과 전 세계에 이미 엄청난 변화와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다가오는 시대의 원리는 우리가 그동안 유지해왔던 집단적 사고, 평등의식, 연고주의, 폐쇄적 민족정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느 사회든지 개방과 자유경쟁을 원리로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보장되는 열린사회, 실용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국가 간 경쟁에서 우리의 선택은 이렇게 변화하든지, 아니면 낙오하는 것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보고 열린 마음과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우리 경제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킨 성공한 정부로 남게 되길 기대한다.

金鍾奭(홍익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