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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정립의 과제안은 정당정치 그 새로운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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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0년대는 의회민주주의 파행속에 저물었다. 당권의 신장이 없는 여당과 집권경쟁의 능력을 다시 조련해야할 야당사이에서 정당정치가 꽃피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병인이 우리 정당들이 물려받은 불행한 유전인자 때문이라해도, 그리고 그 책임이 여야의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다해도 현재의 공화·신민 양당은 이 멍에를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있다. 정당정치가 지금 직면한 질식의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지난 개헌투표때의 엄청난 표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당국회, 새 기수 옹립논쟁과 전당대회를 둘러싼 신민당의 진통, 간접대의기구의 폐쇄를 골자로 한 공화당의 당기구 축소등은 모두 이 [엄청난 표차]에서 나왔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해방이래 한국의 정당들에 공통적으로 내재해있던 구조·기능적 결함이 근원적요인으로 깔려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역대정당은 모두 명망가(혹은 인물)정당의 [패턴]에 속한다. 따지고보면 5·16혁명주체의 민정이양을 위한 탈바꿈이 공화당이었고 이에 동화, 흡수되지 못했거나 혁명의 대상이었던 구정치인들의 편의적집단의 야당을 이루었다.
이러한 생성동기가 근대적인 이념정당에로의 길을 저해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 이박사가 자신의 계속집권을 위해서 자유당을 만들고 한민당은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건국초의 모습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되풀이 된 셈이었다.

<기성체제 붕괴의 진통>
그런점에서 본다면 공화·신민 양당이 지금 겪고있는 진통은 한국정당의 기성체제가 무너지는 필연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60년대가 남겨준 이 미해결의 장은 명년에 있을 선거에 대비한 각당의 당체제정비와 함께 서서히 실마리를 찾고 있다. 실상 공화·신민 양당의 발생과정에서 나타난 흠이 당의 조직구조와 기능을 오염시킨지는 이미 오래이다.
인물중심의 의존집단적 정당에서 탈피하려면 강령의 차이가 보이는 양당정치가 소망스럽지만, 혁신정당의 진출이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서 그것은 공론. 따라서 당의 상부구조가 자기의 발을 디딜 수 있는 지지기반을 각기 갖는 것이 아쉽지만, 이것이 1백60만(공화)이나 38만(신민)당의 당원[카드]에 의해 분식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2월중순으로 점쳐지는 여야협상타결의 근거를 [게리맨더링]적 선거구 조정에서 찾는다하더라도 우선 양당정치의 궤도만은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들이다.

<당 내부적 모순도 병인>
그러나 그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여야의 당내부적 모순에 관한 문제이다.
정당의 기본적 속성은 안에서의 민주적 협동과 밖에서의 집권 경쟁능력이다. 이 기본적 속성은 지난 개헌국민투표와 지금까지 누증되어온 구조·기능적 결함의 승수작용에 의해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정당이 단순한 [법의 의제]로 전략되지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했다.
우선 공화당의 경우, [서정쇄신의 당내구현]이라는 명분하에 중앙위·중앙상위등 대의기구를 폐지한 기구축소는 당내의 대의 [채늘]을 지극히 형식적인 성격의 전당대회하나만 남겨 놓은 결과를 빚었다.
명문상으로는 당권이 최종적으로 귀속하는 것이 전당대회라 하지만, 7·25담화가 나올때까지 당이 했던 역할과 그후 전당대회가 추인했던 과정은 그 성격의 형식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또 야당의 경우, 당초의 국회출석거부가 당내문제와 연결되었는가하면 이 대여전략의 조정과정에서 [분당을 불허]한다는 극한론이 쉽사리 나올 수 있던것은 당내의 민주주의 훈련이 빗나간 느낌을 주었다.

<인물중심이 큰 고질>
신민당은 국민투표의 고배를 들고 일어서기위해 체질개혁운동을 벌이고있으나 그것이 내부에서 선의의 경쟁으로 받아들여지지않고 인물중심과 감정의 대립으로 번지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여야당의 이같은 비정식적 내부질서는 정당의 본래적 기능- 유권자와 정권의 연결-조차 다하지 못하는채 의회정치를 위협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극복은 인물정당으로부터의 탈피다.
[막스·웨버]에 의하면 근대정당의 초기에는 인물중심의 정당이 불가피하다지만, 그러나 이념정당의 모색과 같은 근본적 해결노력은 못 되더라도 악순환의 어느 한고리를 중점적으로 깨뜨려보려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체질개혁으로 집권경쟁능력의 회복을 시도한 일부 소장 신민당원들의 노력, 정치자금의 균점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모색했던 일부 공화당 중진들의 움직임, [의존집단]으로부터의 탈피주장등은 모두 선의의 해석이 가능한 발전적 노력이었다.

<국민의식 구조도 문제>
영국-서독-일본등의 예는 건전한 진보세력의 대두와 자유민주주의 사이가 언제나 [알레르기]반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미국의 번영은 보수양당정치가 반드시 붕당정쟁의 구렁텅이로 인도된다는 가설을 뒤엎었다. 이것은 정당정치와 당의회민주주의가 국민들의 생활질서, 의식구조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헌정 20년을 지나는동안 우리의 주변에도 많은 긍정적 요인들이 조성되어 있다. 항일투쟁이 정치인의 필수적 경력으로 요청되던 시대가 지나 민주주의 교육으로 틀잡힌 새로운 세대가 [어피년·리더]로 등장했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경제적 발전은 [인텔리]계층은 있어도 [부르좌]는 없었던 식민지적 유산을 크게고쳐 산업화에 따른 계층의 분화를 내다보게 한다.
이와같은 여건의 변화는 건전한 정당정치의 받침돌이 될 것이다. 정당의 체제개혁이 당의 내부에 머무르지않고 당외의 기반까지를 고려한 개혁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홍사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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