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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는 한자로써야|국어교육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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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여성잡지 「주부노우」(69·11월호)에 의하면 대판시 소로 유치원에서는 수년 전부터 한자교육을 했는데 그 결과 2년간에 약 8백자의 한자를 거의 모든 원아들이 외워 버리더라는 것이다. 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아들은 「히라까나」(평가명=일본글자)보다 한자쪽이 훨씬 이해가 빠르고 외기 쉬운 것이다. 「와시」라는 글자를 보고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는데 「교·저」라는 한자는 바로 그 보물이 머리에 떠오른다. 표면에 그림, 이면에는 그 그림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를 쓴 「카드」로 놀이하는 가운데 한자를 외게 마련이다. 그것도 하루에 수회, 매회 2, 3분뿐이다. 신문을 읽을 수 있으며 한자섞인 책도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다.』 이 유치원을 거친 한 어린이의 어머니는 『소학교에 가서도 한자시험에는 언제든지 만점이므로 자신이 생긴 듯하다. 소극적이던 아이가 매사에 적극적이오, 책을 좋아하고 이해력도 있는 듯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일서도 「가나」전용 실패>
이 일본에선 9세기초에 한자를 모방한 가명문자가 생긴이후 가명와 한자는 일어를 적는 글자로선 오랜 세월 공존해 왔다. 그런데 일본 한자음에는 오음·한음 등 4·5음이상인 것도 적잖아 한자학습의 부담이 우리보다 훨씬 큰 것이다. 이 일본에서도 한자 폐지론이 제창된 것은 1백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네들도 가명전용론 등 극단론이 있으나 그들 정부는 극단론을 배제하고 국어심의회의 의결답신을 존중하여 상용한자(인명용 한자별표 있음) 교육한자를 공포하여 한자제한이 공용문·교과서·신문 등에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70년도 신학기부터 국민학교는 물론, 주당 5, 6시간의 영어를 가르치는 중학교나 심지어 실업고교에서까지 순 한글판 교과서로 교육을 하고 한자의 한자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방후의 한글전용정책은 최현배박사에 의해 주도되어 왔는데, 그분의 6년동안의 편수국장취임으로 학교교육에서 한글전용방향의 문교정책이 강행되었던 것이다. 이런 한글전용의 어문교육이 『①국민지성저하 ②교육효과 감퇴 ③학술의 발전저해 ④국어의 혼란야기 ⑤문화의 전통말살 ⑥국제적 고립초래』하는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교각살우의 우 없도록>
최박사와 함께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이희승박사가 회장이오, 학계·언론계·문인·법조계 등 1백80여명의 발기로 발족한 한국어문교육연구회의 발기취지서가 그것이다. 뿐인가? 그동안의 신문사설 등이나 대학교수·강사를 주축으로 하는 국어국문학회 회원들의 설문회신에서도 뒷받침된다. 1백9명의 회신에서 각급 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지지됐는데 그 찬·불찬은 국교 76대 22, 중고교 83대 14, 실업고교 94대 10으로 나타나있는 것이다. (찬·불찬 합계가 회신인원미달인것은 그 설항에 부답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독서에도 능률적>
실상 우리는 해방후 20여년을 한글전용이다, 한자제한이다 해서 논전만을 거듭했을 뿐 학교교육과 사회와는 평행선을 그어왔던 것이다.
이 한글전용방향의 학교교육으로 한글전용론자는 신문한장 제대로 읽지 못하는 많은 동조자를 얻은 셈인데 만시의 탄은 있으나 문화백년대계를 위해서 그 방면 전문학자(한글전용론자 중심의 편파성지양)를 중심으로 상설국어연구소를 두어 장기적인 연구조사를 하게하고 초·중·고교에 연구실험학교를 두어 과학적 뒷받침있는 국어국자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1천5백자∼2천자의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고 각급 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시행되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한자어도 국어다. 국어의 태반을 차지하는 한자어의 모태인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국어교육의 지름길이다. 1천3백자의 상호결합으로 약 6만단어를 이룬다는 보고가 있다. (C대어문논집). 한자어는 한자로 써서 가르쳐야 그 한자가 빈출함에 따라 한자와 한자어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도양단·다다익선·공과상반·사필귀정·견물생심·각골난망·동문서답·문일지십 등 배우지 않아도 한자지식이 있으면 자득할 수 있지 않은가? 한글전용으로 수만 한자어의 뜻을 어원도 모르고 개별적으로 기억하는 부담은 2천자이내의 한자를 공부하는 것보다 몇 배의 정력낭비다.
②한자는 한자로 써야 독서에 능률적이다. 한글세대의 여대 1년생도 국한혼용문이 한글전용문의 5분의 3의 시간이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E여대학보)
③한자어에는 동음이의어가 너무나 많다. 그 식별은 한자로 써야 빠르다. 순우리말에도 동음어가 있으나 수적으로 한자어의 7분의 1이라는 통계가 있으며 또한 일상용어이므로 어렵지 않다. 한자동음어는 한자지식이 있는 이의 조어이므로 관념어 등이 많아 한자지식없이 그 식별이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4, 5개짜리 동음어는 많고 10개이상짜리도 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월남의 전철밟지 말라>
④한자문화 흡수에는 한자·한문교육이 필요하다. 고전의 국역을 적극 찬성하나 『①어느 겨를에 모든 고전을 ②어느 국력으로 ③어느 누가 ④얼마나 정확히 국역해 내느냐도 문제지만 한글로 된 국역본에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한자어를 한자 지식없이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국역본은 고사하고 한글소설인 춘향전 한권을 읽어보아도 알 일이다.
⑤한자의 표의성에서 오는 조어력이나 그 축약력 등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을「조부모」「학교에 들어가는 시험」할 것을「입학시험→입시」「양곡시장조합」을「양시」로 하는 것은 노력경제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한자의 장점인 것이다.
⑥한자교육으로 국어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한자교육이 소외될 경우 ▲맞춤법의 혼란(문리·금융·법률같은 발음이 표기와 다르므로) ▲장단음 발음의 혼란(고대와 고대, 호인과 호인, 정과 정) ▲동음이의어와의 구별, 난어의 우리말화로 신어의 남조(남가루받이, 많이낳이닭, 말본갈말식)가 예상되는데 국어의 혼란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주당 5, 6시간의 영어교육을 6년간에 걸쳐 받고도 고졸생의 원전 해독자가 드문데, 인문고교생에게만 2년간 주당 1시간씩의 한문교육만으로 고전은 고사하고 한자어 투성이인 고전국역본의 해독조차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 월남이 근 2천년의 한자문화생활로 안남어에서 차지하는 한자어의 존재가 큰 역사적 사실을 몰각하고 19세기 「프랑스」치하에서 제일 먼저 한자를 외면했는데 오늘날은 현역국학자가 단 1명뿐이라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자기상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남광우(중앙대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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