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은 소통이자 혁신 … 정책, 작품 만들듯이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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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 고건의 공인 50년, 국정은 소통이더라’의 연재를 마치면서 29일 인터뷰에 응한 고건 전 국무총리. 그는 “연재가 끝나 시원섭섭하겠다”는 말에 “그쪽은 시원섭섭할지 몰라도 나는 섭섭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안성식 기자]

정치의 꿈을 품은 젊은 대학생 시절부터 대권 앞에서 스스로 뜻을 접을 때까지. 고건(高建·75) 전 국무총리는 공인으로서의 50년 삶을 5개월 넘게 115회의 글로 풀어냈다.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를 마무리한 고 전 총리를 2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안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정엔 열의, 권력의지는 강하지 못해

 - 대선 출마를 포기하는 과정의 얘기는 왜 서둘러 마무리했나.

 “공인으로서 제일 큰 실패였고 마지막 실패였다. 나름대로 대선 출마의 뜻을 접게 된 이유만은 분명히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 연재를 시작할 때 ‘대통령의 꿈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제 ‘꿈은 있었지만 대통령을 향한 권력 의지가 분명히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해석해도 될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나랏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그러나 권력 쟁취에 대한 의지는 그만큼 강하지 못했다. 제 본업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전문 행정가였다. 그렇게 체질화됐다. 권력 지향적이라기보다는 권력 중립적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직업적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권력투쟁 의지를 갖지 못했다.”

 - 대권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

 “패장이 훈수를 해선 안 되지.”

 정치 문제엔 여전히 말을 아꼈다. 고 전 총리는 “권력투쟁과 정당정치에 대해선 일정한 거리를 뒀다. 그게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 국민과 소통 노력 시작 단계

 - 왜 연재의 주제를 소통으로 선택했나.

 “일반론적으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사회 갈등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한다. 이 많은 사회 갈등을 해소하려면 소통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 여와 야, 노사 간에 서로 소통하면서 협력해야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 소통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 현 정부는 소통을 잘하고 있나.

 “평가하기엔 이르고…. 근래에 국민대통합위원회, 문화융성위원회 등을 통해 정부가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과 소통하려고 노력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 소통만큼, 혹은 소통보다 중요한 키워드를 꼽는다면.

 “나는 ‘국정은 소통’이라고 했는데 다르게 표현한다면 ‘국정은 혁신’이다. 나날이 변하고 있는 행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일일신(日日新·나날이 새롭게)해야 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 국정 시스템 혁신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정책을 수립할 때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 듯이 해야 한다. 어느 작품이든 작가의 이름이 붙듯이 정책을 수립한 사람의 이름을 밝히는 정책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 전 총리지만 여전히 “행정은 어렵다”고 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보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 연재를 마무리하는 소회는 어떤가.

 “행정이라는 게 해놓고 보면 보람은 있지만 그 과정은 고민하고 치열하게 정성을 쏟고…. 원래부터가 행정은 재밌는 소재가 못 된다. 내가 체험한 사례를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노력은 했다. 좌우간 재미없는 얘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열정과 배려, 그것이 공무원의 영혼

 - 연재 내용 중 실패담이 적어 아쉽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저도 그 점이 아쉽다.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현존하는 행정 시스템이거나 사업의 결과이거나 또는 건설된 시설이거나…. 이런 행정의 결과에 중점을 두고 소개하다 보니까 자연히 성공담 위주로 흘러갔다.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성공은 없다. 전 그렇게 생각한다. 언제 실패담을 모아 풀어놓을 기회가 있을 거다.”

 ‘다시 공직에 나갈 생각은 있느냐’고 묻자 고 전 총리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전혀. 젊은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응원하고 박수 치고. 그런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그럼 후배 공직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렇지 않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미칠 정도로 열정을 가진 현장주의자들을 아주 좋아했고 많이 만났다. 그런 파트너들과 함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갔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누군가 ‘노숙자대책팀에서 일한 아무개입니다’ ‘CNG버스 처음 시작할 때 일했습니다’라고 말을 걸어온다. 물러난 공인으로서 큰 보람이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 ‘Passion’과 어려운 국민을 위한 배려, ‘Compassion’. 그것이 공무원의 영혼이다.”

글=조현숙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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