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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어린이 유괴<국내>|마수에 걸린 새싹 1,863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10년만큼 어린이 유괴사건이 잦은 때가 또 있었을까. 서울의 「조두형군 유괴사건」 (62년9월10일), 대구「유수남군 사건」(63년3월), 서울의 「김희규군 교살사건」(63년) 순천「이상범군사건」(67년), 진주의 「춘우군살해」 (67년), 부산의「근하사건」 (67년)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 큼직한 어린이유괴사건만도 14건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도 검찰의 위신과 피고인들의 목숨이 걸린 법적투쟁으로 꽃불을 튀긴 근하군사건은 대담하고 치밀한 범행수법, 수사에 동원된 인원과 경비, 수사선상에 올랐던 용의자가 많기로 손꼽혔다.
과외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부산화랑국민교5년 김근하군(11)이 살해된 것은 67년10월17일밤. 자기 집에서 불과 25m의 거리에서 가슴을 칼로 찔려 살해된채 「링게르 박스」에 담겨져 유기되기 직전에 발견되었었다.
당시부산지검 김태현부장검사는 사건발생 7개월만인 68년5월29일 김금식등 4명을 검거,『근하군은 그의 외삼촌 최상욱(47)이 대구교도소에 복역중인 김금식과 공모하여 교도관을매수한 끝에 저지른 유괴살해』사건으로 발표했었다.
그것은 곧 교도소에 수감중인 죄수가 범죄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외출범행」이라 하여 그 여부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 교정당국의 싸움을 불러일으켰고 피고인들 또한 법정에서 그결백함을 난동에 가깝도록 주장하여 그처럼 소란스런 사건이 없었음을 보여줬다. 1심에서의유죄판결이 항소심에서 번복되고, 대법원에서 무죄임이 확정되어 검찰의 수사능력한계 문제와 함께 유괴사건의 수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드러내준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60년대를 통틀어 발생한 갖가지 어린이 약취 유인및 유인살해사건은 모두1천8백63건-.우리나라에서 유괴사건처럼 부모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건이 없음을 가장 잘 나타내준 사건이 62년 서울서 발생한 조두형군(당시4세) 유괴사건이었다.
가수 이미자양의 『두형이 찾기 노래』와 함께 세상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집앞에서 놀다가 행방불명된 직후 현금20만원을 지정장소에 갖다놓기를 요구했고 협박장,전화등 갖가지 단서가 있었으나 이제는 영구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다.
같은 대부분의 유괴사건이 영리를 목적으로 저질러졌다. 대구의 수남군 사건은 죄질을 두고볼 때 가장 악질적인 것이었다. 광주역전에서 놀고 있는 수남군을 대구로 유인, 경북영2200호 시발「택시」에 태우고 가다 바퀴밑으로 떠밀어 중상을 입힌 후 다시 목을 졸라 죽여놓고 운전사 차주를 등쳐 4만원을 뜯어냈던 최병복등 4명의 살인 행위는 범죄전과자, 범죄상습자, 범죄 기교에 자신있는 자만의 추악한 범행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62년10월20일 서울용산경찰서에 붙잡힌 이영자(22)등 5명의 여자유괴단사건은 16명의 나어린 소년 소녀를 유괴, 뭇매를 때려가며 소매치기, 들치기, 껌팔이등을 시켜 돈을 벌어들이던 「아들잡이」패의 본보기, 이욕에 눈먼 어린이 유괴였다.
그뿐인가. 탈의만을 전문으로 한 어린이 유인이 해마다 문제되기도 했다.
68년1월 부산 대청동4가55 오도한씨(45)의 3남 태용군(11)의 유괴살해사건은 부모에 대한원한이 어린이에게 화를 끼친 것. 헤어진 오씨의 첩이 앙심을 품고 살인청부를 하여 끝내는60만원을 요구까지 한 사건으로 원한이 어린이의 유괴동기가 된 좋은 사례였다.
그밖에도 양육을 목적으로 한 유괴, 중요한 범죄를 숨기기 위한 유괴 어린이를 약용으로복용하면 좋다는 미신에 홀려 유괴살인한 「케이스」등 갖가지 어린이유괴범죄는 대부분의 경우 계획성이 있고 범죄현장이 여러 군데로 협박을 수반하고 공범자가 있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검거된 많은 유괴사범이 20대안팎의 젊은층이 많았던 것은 앞으로 우리사회가 청소년 선도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해야 될 주요과제를 안겨다준 것이기도 하다. <백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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