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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허영의 세모」에 "선의"는 대답없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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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모의 풍경은 마치 「배니티 페어」를 연상하게 만든다. 허영의 시장-.
「배니티 페어」 (Vanity Fair)는 「존 번얀」(1628∼88)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한 도시의 장터에서 유래한다. 악마들이 세운 이 장터에서는 인간의 허영심을 돋우는 상품들이 팔리고 있었다. 「윌리엄·대커리」의 소설제목에도 이와 똑같은 것이 있다. 하늘의 분노를 사는 인간의 허영심, 허세를 묘사한다. 바로 그 주인공이 결국은 자선사업에 투신하여 세상의존경을 받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상가매상 30억 잡아>
소설의 장면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속에서 세모의 거리는 흥청거린다. 서울의 백화점은 이 대목에 최고는 5억원의 매상을 바라보고 있다. 백화점·상가등에서 세말매상은 무려 30억원을 예상한다.
이것은 평시의 5배를 넘는 합계이다. 연중 이처럼 호화롭고 호사스러운 절기는 다시없다.가두는 온통 그런 분위기에서 출렁거린다. 소비시대가 아니라 「허영시대」인 것 같다.
이런 가두에서 경종처럼 울리는 종소리.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여러분의 따스한 마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시간은 있습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이 스스로 구제 받을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쩔렁, 쩔렁, 쩔렁 지금 이 시간에 울부짖고 있는 아이들의 음성이 들리지않습니까?』
낭랑 (낭낭)한 목소리. 우리들의 발걸음은 문득 무거워진다. 구세군들은 경세의 웅변처럼그 썰렁한 바람속에 한마디씩을 실려보낸다. 혼탁한 발걸음, 파도처럼 밀려가는 시간속에서 이 한마디는 메아리도 없이 사라진다.
68년 구세군의 자선남비에 떨어진 돈은 50만4천6백22원이었다. 이번 세밑은 70만원쯤 되리라고 어림한다. 23일 현재 서울의 모금합계는 59만원. 종소리의 여운이 얼마나 짧은가를 알수 있다. 실로 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는가.
허영의 합계와 자선의 합계는 바로 비정사회의 단층을 보여준다. 「에고이즘」, 텃없는 소비풍조, 누구도 자제하려 하지 않는 허세는 바로 우리 사회의 내부이기도하다. 그것은 어둡고 일그러진 내면의 상이다.
이런 충격적인 통계도 있다. 연간 정부에서 거두는 주세는 1백54억원이나 된다. 주류의 총매상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나타난다. 주류의 40%를 차지하는 맥주의 경우 연1백20억원.월평균 10억원의 맥주가 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기타 주류까지 치면 월평균 무려 25억원의 매상을 추산할 수 있다.
구세군의 자선남비에 떨어지는 돈은 그 술값의 5천분의1에 해당한다. 우리의 도덕감은 정상의 「5천분의 1」쯤 이랄까.

<좀먹는 상업주의>
입장세와의 비교도 「쇼크」를 준다. 연25억원. 평균세율을 20%로 할 때 역시 월10억원이각종 입장료로 지불된다. 극장·「터키」탕·「사우나」탕·「나이트 클럽」등-.
자선금은 그 2천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허다한 소비는 모두 접어두고라도 술과 유흥비의 합계중에서 우리는 겨우 그 7천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자선심에도 인색하다.
세모의 그늘은 이렇게 길고 어둡다. 구세군의 종소리는 유달리 어설프게만 들린다. 그들은불과 60∼70만원의 돈으로 2천여명의 빈민들에게 고깃국과 과일을 나누어줄 계산을한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는 백미를 사서 한말씩 나누어줄 계산이다. 얼마나 가난하고 옹색한 잔치인가. 「허영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한 토막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란 상실이며 단념이라고 말한 철인이 있었다.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버렸을 때, 사랑은 더욱 풍부해진다는 「에피그램」이다.
올해 연말에도 「샐러리맨」들에겐 「보너스」가 지급됐다. 전국의 근로자들 중 불과 얼마 안되는 「복」된 사람들이 탄 금액은 약40억원 정도라는 것. 한국은행은 그 추정을 월급여액백80억원의 1할이하로 잡고있다. 연말의 흥청대는 경기를 과연 이 가난한 「샐러리맨」들이 얼마나 선도하는지는 모르지만 상가와 유흥가는 들먹인다.
하찮은 상업주의, 하찮은 물질우선주의, 하찮은 미몽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수인사로 시작되고 또 그것으로 끝이 난다. 이 아름다운 인정이 세말의흥청거림으로, 세속의 탐욕으로 무디어진다는 생각은 더없이 우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경세의 종으로 알자>
1969년의 낙조에서 실로 우리가 닦아야할 것은 그 어두운 마음의 거울이다. 부질없는 술렁거림에, 분수에 없는 허욕이 냉소를 보내야할 시간은 지금이다. 허례에 경멸을 보내야할 시간도 지금이다. 인간부재의 시장에서 되찾아야할 것은 우리의 고상한 인간상·시민상이다.
구세군의 그 맑은 종소리가 경세의 소리로, 낭랑한 웅변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복이 나가는 자에게 복이 돌아오리니』
구세군는 이렇게 우리를 교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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