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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음악제 벌써 10주년 학생이 자라 스승 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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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처음엔 외국인들이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해 애를 먹었다. ‘대관령’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국제 인지도가 아예 없다시피 한 데다 발음마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애스펀 같은 자연 속 국제음악제를 하나 만들자는 꿈은 자칫 백일몽으로 끝날 뻔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대관령국제음악제 얘기다. 다행히 강효 줄리아드 음대 교수, 그리고 세종솔로이스츠와 인연이 닿았다. 강원도에서도 오지에 속하던 평창은 지난 10년 사이에 세계 음악인들이 초청받고 싶어 하는 연주 메카로 발돋움했다.

 지난 토요일 대관령음악제에 갔다.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파가니니와 드보르자크를 들었다. 파가니니 기타 사중주에서 바이올린을 켠 클라라 주미 강은 대관령음악제에서 운영하는 음악학교 출신이다. 그새 쑥쑥 커서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센다이 국제바이올린 콩쿠르에서 동시에 우승(2010년)한 스타가 됐다. 주미 강처럼 학생에서 스승으로 성장한 음악학교 출신이 벌써 수십 명이나 된다. 강효 감독이 주춧돌을 놓은 음악제를 2010년부터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이어받자 판이 더 커졌다. 국제적 음악 인맥의 힘이다. 지난해까지 세계 초연이 11개, 아시아 초연이 7개, 한국 초연이 4개나 된다. 27일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연주된 리처드 대니얼푸어의 ‘방랑하는 다르비슈의 노래’도 세계 초연이었다.

 토요일 저녁 음악회의 피날레는 젊은 시절의 나에게 용기와 위안을 안겨주었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였다. 가슴속에서 잔향(殘響)이 여전히 요동치는 가운데 대관령음악제의 산파역이라 할 김경순(65·강원대 명예교수)·이강순(64·강원대 문화예술대 교수)·이희수(60·전 춘천YWCA 회장)씨와 함께 맥주 한잔을 했다. 성경 공부 모임 멤버이던 이들은 2001년 포항·전주에서 세종솔로이스츠를 영입해 음악제를 만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로 모셔오자”고 의기투합했다. 당시 김 교수의 언니(김태자)가 강효 교수의 서울대 음대 동기이자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인 점을 십분 활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소는 겨울올림픽 유치를 모색하던 평창으로 최종 결정됐고, 2004년 드디어 제1회 대관령음악제가 열렸다.

 연상되는 것이라곤 산과 강, 감자,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정도였던 평창이 세계적인 음악제의 고장으로 떠오르다니 참 대견하다. 강원도 일각에선 아직도 “서울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킨다. 차라리 이미자·심수봉을 데려와야지”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대관령음악제의 엄청난 브랜드 효과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5년 뒤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도 음악제 덕분에 ‘문화 올림픽’을 자부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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