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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근본적 변화는 없지만 '임계점' 근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시대가 정말 변했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중국인과 함께 한반도 평화통일 세미나를 열다니….”

냉전사(冷戰史) 전문가로 유명한 뉴쥔(牛軍·59·사진)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의 말이다. 지난 24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베이징에서 개최한 ‘정전 60주년 한·중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그는 “한반도에선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정전협정 체결 기념행사(7월 27일·전승절)에 권력 서열 8위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을 보냈다. 일각에선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 또한 만만찮다.

“과거에 발생한 일을 분석하는 게 내 전공”이라며 선을 긋는 뉴쥔 교수에게 정전 60주년을 맞아 중국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인터뷰는 24일 저녁 베이징대 연구실에서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나.
“2006년 1차 핵실험 뒤 방북했다가 적잖이 놀랐다. 첫째, 핵실험을 해 놓고도 정작 북한 군관들은 외부 세계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유엔이 어떤 결의안을 채택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둘째는 개성을 방문했을 때다. ‘옛날 조선 국왕이 즐겼다는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해 잔뜩 기대를 했는데 나온 건 대부분 채소류였다. 그래서 속으로 ‘조선 왕은 채소만 먹고 살았나’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셋째는 우리 방북단 일행에게 김정일 동상에 세 번 절하라고 한 거였다. 내가 한 번만 하니까 북쪽 사람이 주의를 주더라. 그쪽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 해도 절을 하고 마는 문제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일 동상에 한번만 절했다 ‘주의’ 받아

-전체적인 방문 소회는.
“북한 방문 뒤 내린 결론은 ‘북한은 시간이 멈춰 버린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거였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중국의 1950~60년대와 비슷했다.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와 여권을 걷어 간 뒤 여행이 끝날 때 돌려줬다. 잠시 동안 신분이 없는 사람, 바깥세상과 연락할 수도 없는 상태가 돼 버린 거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북·중 국경지역에 왔을 때 열차 바퀴를 바꾸는 시간이 있었다(중국과 북한은 철도 폭이 다르다). 맞은편에 중국 단둥(丹東) 지역이 보였다. 순간 ‘자유란 게 참 좋은 것이구나’라는 감회가 들더라. 북한이란 나라는 가 보지 않고선 이해하기 힘든 나라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북한 여행을 추천하겠는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런 나라가 얼마 동안 지속되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북한인들의 국가관과 지도자에 대한 태도는 마치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와 같았다. 가 볼 기회가 있을 때 가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못 볼 수 있다.”

-북한 체제의 미래 전망은.
“역사 연구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체제는 오래가기 힘들다. 하지만 갑자기 붕괴될 경우 주변국들에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다. 북한이란 나라를 외부 압력으로 바꾸긴 힘들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개혁·개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더 좋은 방법이지 않겠나.”

-정전협정 60주년이다. 북한은 왜 ‘전승절’이라 부르는가. 어느 한쪽의 승전이라 할 수 있나.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6·25전쟁이 어떻게 발발했는지 잘 모른다. 지난해 가을 북한 유학생이 내 강의를 들었는데, 6·25에 대해 ‘미 제국주의가 우리를 먼저 침략해 물리쳤다. 그러니 우리의 승리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라. 북한에서 그 전쟁을 ‘패배’했다고 하는 건 김일성 정권의 합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된다. ‘위대한 장군’이 어떻게 패배할 수 있겠나.”

-정전협정 40주년(1993년)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 갔는데 이번엔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이 갔다. 대표단 급이 낮아진 이유는.
“중국이 대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북·중 관계가 더 이상 ‘혈맹’이나 ‘사회주의 진영’의 시각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중국 외교의 기본인 ‘평화공존 5원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뉴쥔 교수가 24일 열린 ‘정전 60주년 한·중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장효]

-북·중은 현재 동맹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나.
“북·중 관계는 조금 ‘신비성’을 갖고 있고, 또 조금은 모호하다. 하지만 북·중 관계를 동맹이라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중국은 이미 수차례 스스로를 ‘비동맹 국가’라고 선언했다.”

-중국은 북·중 관계를 ‘전통적인 우호관계’라 칭하는데, 이때 ‘우호’는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나.
“중국의 외교정책은 모든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일본은 예외다(웃음).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베이징에서 평화통일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이전의 적끼리 모인 것이다. 당시 ‘동맹’이라던 북한은 참가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 자체가 벌써 이상한 일이다. 확실한 건 요즘 한·중 양국이 서로 느끼는 친밀감은 북·중이 서로 느끼는 친밀감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거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는 건가.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확연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임계점에 가까워지는 수준이라고 본다. 북·중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말고는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 심지어 북한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도 계약을 안 지키는 북측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도 ‘전략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지 않나.
“전략적 완충지대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상대방이 중국과 맞닿은 국경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말아야 한다. 둘째, 중국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은 미국처럼 중국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닐지라도 그보다 조금 덜한,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정도일 뿐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중국에 안겨 준 부담은 북한이 중국에 제공하는 전략적 이익보다 더 커져 버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북핵 포기 위한 6자회담, 제 기능 못해

-그럼에도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가장 큰 요인은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대북정책 자체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한 의제라는 거다. 심지어 중국이 겪는 각종 무역분쟁이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성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대북정책 변화를 위해 일부러 회의를 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 바뀔 가능성이 있다.”

-북핵 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해법은 뭘까.
“어렵다. (마시던 물컵을 탁자에 놓으며) 이렇게 한쪽 구석에 그냥 방치해 두는 게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북핵을 제거하려는 과정에서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가 제3국에 흘러갈 수도 있다.”

-6자회담은 실패한 모델이란 평가가 많다.
“우리가 6자회담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북핵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보면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은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사용될 수 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 적어도 각국 입장을 들어볼 수는 있다. 6자회담의 또 다른 문제는 각국이 서로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중국은 중·일 관계를 어떻게 꾸려 갈까.
“현재로선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양쪽에서 모두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과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중국인도 적잖다. 중국인들의 대일감정이 원래 부정적인 데다 언론도 연일 부정적인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언론 뒤엔 정부가 있다. 지금 중국에선 ‘일본의 우경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북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냉전적 대립구도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상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6·25전쟁 땐 남북한 모두 힘이 없어 주변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됐다. 지금은 국제무대에서 남북한의 발언권이 세졌다. 남한엔 경제력이 있고, 북한엔 핵무기가 있다. 남북한이 스스로 문제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더 커졌다.”

-중국이 동북아 안보협력을 주도할 가능성은.
“쉽지 않다. 동북아에선 미국이 반대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미국은 자기가 리더 역할을 못할 경우 다른 나라가 자신을 대신하게끔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일본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다. 동북아 리더가 되려면 중국은 이들 국가에 안보 보장이나 군사적 보호 같은 ‘공공재’를 제공해야 한다. 중·일 갈등과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중국 지도자의 성향을 모두 고려할 때 아직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다.”

-한국은 중국과의 군사·안보 분야 교류 증대를 희망하고 있다.
“갑자기 한·중 군사·안보 협력체제가 출범하면 파장이 작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 중국은 내년에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군사훈련에 처음 참가하는데, 그때 자연스레 한국군과도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다국군 협력체제부터 시작해 서서히 양국 간 군사관계로 발전해 가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도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지지할 수 있는 중국의 ‘바텀 라인(底線)’이 있다면.
“내가 냉전 전문가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다. 가설을 세운다 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 역사에는 ‘우연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중국인들의 안보심리로 볼 때 중국 국경지역에 외국군의 대규모 주둔은 안 된다는 거다. 또 하나는 통일 이후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여부다. 미국은 지역 주도권 관리 차원에서 미군을 계속 두고 싶어 할 수 있다. 물론 막대한 해외 주둔 비용 때문에 스스로 떠날 수도 있다.”

牛軍 1954년 충칭 출생. 88년 인민대 박사(역사학). 2000년부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서 가르쳐 왔다. 6·25전쟁, 중국의 외교 결정 과정 및 냉전역사, 중국의 외교전략 등이 주요 연구 분야다. 영국의 저명 학술지 ‘Cold War History’ 편집위원,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위촉한 전문가 위원이기도 하다. 최근 ?냉전과 신중국 외교의 기원(冷戰與新中國外交的?起)?을 펴냈다. 2009년 베이징대 ‘10대 우수 교수’로 선정됐으며 그동안 80여 편의 논문을 썼다.

베이징=써니 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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