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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는 「한국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둘 모여 5백가구>
코리언이 없는 「코리언·빌리지」(한국촌)가「이디오피아」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다. 언제 생겼고 또 정확하게 몇 가구나 살고 있는지 도시 구획이 명확치 않고 호적도 없는 나라라 알 길이 없지만 주민들 말로는 한국 동란 때 UN군속에 끼어 참전했다가 돌아 온 남자들이 하나 둘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살게 되었으며 현재 5백가구 쯤이 살고 있다.

<외국 파병은 단 두 번>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사가 긴 독립국인 「이디오피아」는 역사상 두번 군대를 외국에 파견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6·25동란 이듬해 한국에 1개 대대 규모의 황실 근위병을 보냈고 또 한번은 1960년 콩고 분쟁 때 유엔 요청으로 중대 병력을 보냈다.
그래서 한국촌 이외에「콩고」촌도 있다. 「아디스아바바」북쭉 계곡 아래쪽에 먼저 생긴 것이 한국 촌이고 그 윗동네가 콩고 촌이다.
1954년 휴전 협정이 성립되기까지 한국을 다녀간 「이디오피아」군인은 약5천명이다. 이들이 귀국해서는 대부분 시골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한국촌에 정착, 옛 전우들끼리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다. 20여년을 지내는 사이에 벌써 고인이 된 사람이 많으며 지금 이 부락에 살고 있는 참전 용사들은 거의 모두 40고개를 넘었다.
이들은 아직도 근위병으로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역해서 관청일을 보거나 혹은 「택시」운전, 학교 잡역부로 생계를 잇고 있다.

<소중히 간직한 수첩>
기자가 한국촌과 콩고촌 사이에 있는 한 국민학교를 찾아갔을 때도 세사람의 참전 용사가 교장의 부름을 받고 달러왔다.
저마다 수첩에서 퇴색해 버린 사진을 꺼내 보이면서 여기는 춘천, 이곳은 평택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이구동성 『한국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틈이 있어 모이기만 하면 그 때를 회상하면서 오늘의 비참한 생활을 달랜다고.
그럴 것이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 정부가 지급해 준 좋은 옷을 입고 훌륭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월1만원도 못 되는 벌이로 10명 가까운 식구를 부양해야 한다.
한국촌의 촌장은 명의상 황실근위대장으로 돼 있다. 그러나 근위대장이 이곳에 들르거나 한국촌 일을 보는 일은 거의 없고 현재 세 사람의 퇴역 용사들이 동네를 셋으로 갈라 동사무에 해당하는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한 사람은 재무성에 근무하는 바추추 퇴역 상사이고 또 한 사람은 퇴역후 경찰관이 된「마스카루」대위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웰데마렘」상병인데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동사무만을 보고 있다.
이들은 내년쯤 박 대통령의 「이디오피아」방문 때에는 한국촌을 찾아줄는지 모른다고 기대가 대단하다.【변도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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