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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국제주의」가 비판받을 때는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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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은 세계 무대에 지나치게 깊숙이 발을 들여놨다.
특히 군사적으로 내디딘 발목은 뽑을 수도 없을 만큼 깊이 박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같은 과잉개입의 외교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행정부는 독재에 가까울 이만큼 전담적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43개국과 쌍무 또는 다변 안보조약을 맺고 있다.
조약조건이 발동하면 미국은 당장 전쟁터에 나가야할 조문이 수두룩하다. 조약조건이 너무 광범해서 미국의 군사력이 총동원해도 감당 못할 판이다. 1914년까지의 구주의 열강들처럼 오늘의 미국은 군사조약의 요건과 한계를 무시하고 있을 뿐더러 조약의 의무를 절대적이고도 무한정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컨대 「시토」(동남아조약기구)조약은 그같은 43개국의 군사조약에 끼지도 않는 것인데도 우리는 월남전에 말려들었다.
더구나「시토」조약의 어느 귀퉁이에도 군사개입의무 조구는 없다. 그 조약 안에서 우리가 지고있는 의무는 월남이 중대한 평화위협에 빠졌다고 판단했을 땐 조약 당사국들과 『즉각적인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행정부는「시토」조약에 의거, 월남전에 개입했다고 강변해 왔다. 우리의 실리와 의리에 대한 그같은 오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연3백억불의 돈과 50만의 인명을 월남「정글」속에 쓸어 넣고 있다. 일방적이고도 무분별한 국제주의가 비판받을 때는 왔다.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자세는 타국이 취하는「이데올로기」나 정부형태가 아니라 그 나라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미군의 철수로 월남의 자유민이 평화를 잃는다면 그것은 도의상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같은 안타까움이 한 주에 수백명씩 쓰러지는 미국 청년들의 원혼을 달랠 수는 없다. 정 다급하다면 공산당과 영영 같이 살 수 없는 10만명 정도의 월남민을 미국에 이민을 시키는 방법이 차라리 낫겠다. 미국의 행정부는 그들이 타국과 맺는 행정협정과 국가의 정치적 개입을 분간 못하고 있다. 「시토」조약 4조에 따르면 『당사국이 위협을 당하면 각국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공동행동을 취한다』돼 있을 뿐인데 미국은 의회의 승인 없이 미국에 이미 5만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같은 군사적 개입은 「러스크-코만-로저즈」외무각료의 공동성명에 준거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위헌이다. 행정부의 이같은 전횡은 적법 절차 없이「스페인」에 미국기지를 설치하여 사실상「프랑코」정권과 군맹을 맺게 했다. 「스페인」에의 군사개입은「러스크-카스티엘라」협정에 따른 것뿐이다.
상원외교위원회의 견해로는 그같은 협정성명 각서에 의해 중대한 군사개입에 뛰어드는 위헌 이전에 상원의 조약권에 대한 탈권 행위이다. 행정부의 행정부로 4년만에 물러나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빠져들어간 전쟁은 4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헤밀톤」대통령은 일찌기 대통령의 국군 통수권은 『병력 지휘의 최고사령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못을 박았다. 사실이 그러할 진대 우리의 월남전에 대한 결론은 종전 그것뿐이다.
나아가서 이 기회에 우리는「스페인」으로부터 태국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개입 망을 재검토, 의회의 추인과 개입가치를 신중히 검토해야할 것이다. 또한 정권의 교체에 따르는 대외 개입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절차상의 장기대책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상원외교위원회가 10년에 한번씩 국가의 전반적인 대외관계를 공청회를 열어 조정하도록 하는 규제법을 마련할 수도 있다.
가령「시토」나 「나토」(북대서양동맹기구) 의 존립 이유를 달라진 상황 속에서 재편하는 작업 같은 것 말이다. 「뮌헨」의 유화외교 때부터 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만든 정책에 의해 오늘의 젊은이가 전장에서 쓰러지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묵은 세대가 물려준 군사개입에서 새 세대가 고역을 겪는다면 새 세대는 마땅히 묵은 세대가 지워준 짐으로부터 풀어져야할 것이다.
권력의 평준과 사회의 건전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우리가 세워야할 미국』 과 『우리가 행사해야 할 세계에서의 역할』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은 세력균형의 강박관념에 눌려 남의 나라에 내전에까지 끌려 들어갈 소지가 많다. 이대로 가다간 미국은 만성적 전역과 무거운 부담, 국민생활의 군사회에의 지향, 그리고 미국의 행정부는 『선거된 독재체제』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제부터 실리와 국가재정에 알맞은 대외개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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