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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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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장작업은 고역이기도 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주부들이『아유, 금년 김장은 또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할 때, 손끝은 벌써 노란 통배추의 통통한 촉감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김장 날은 잔칫날처럼 떠들썩하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아이들은 속대쌈을 너무 먹어 입을 호호 불며 올 겨울 김치 맛은 어떨까 기대를 갖는다.

<북녘은 심심, 남녘은 짭잘>
중국의 주나라 문왕은 창포김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치의 역사는 중국이 오래고, 우리나라에 김치가 들어온 것은 한사군 시절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추가 들어온 것이 임진란 이후라고 하니, 본격적인 김치의 발달은 4백년동안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동치미, 나박김치, 보쌈김치, 석박지, 백김치, 갓김치, 꿩김치,닭김치, 석류김치등 우리나라의 김치종류는 20여 종류가 넘는다.
대체로 북도에서는 김치를 심심하고 시원하게 담그고, 남도는 젓갈을 많이 써서 짭짤하고 깔끔하게 담근다. 개성, 평양, 전주, 서울등 유서 있는 몇몇 도시들은 제각기 독특한 김치 맛을 간직하고 있다. 궁중은 궁중대로 왕실의 김치 미각을 간직해 왔다.
개성의 보쌈김치와 석류김치는 미각으로나 시각으로나 우리나라 각도 김치중 보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파, 마늘 고추, 생강, 미나리, 부추등 일반적인 양념 이외에 밤, 잣, 배, 표고, 낙지, 전복 편육등을 배춧잎에 싸서 익힌 보쌈김치는 식탁에서 잎을 끌러낼 때 채송화 꽃밭 같은 아름다운 빛깔로 식욕을 돋운다.
석류김치는 손가락 크기로 잘라낸 무우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새빨간 무우소를 끼우고 푸른 배춧잎에 싸서 젓국에 절이는 풍미김치. 보쌈김치처럼 잔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격조 높은 김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에 보급된 궁중방식>
궁중의 십이첩 수랏상에 오르던 김치는 보쌈, 젓국지, 동치미, 속고갱이, 석박지, 송송이(깍두기)등이었는데 양념가짓수가 스무 가지가 넘었고 김칫국에 꿀을 달여 부어 맛을 내었다. 짜고 매운맛이 없고 간이 삼삼하고 단맛이 나는 궁중 음식은 왕실이 문을 닫으면서 일반가정에 많이 보급되었다. 오래 묵은 진간장으로 담그던 장 김치가 그중의 하나.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어 김치 맛이 그리워진 여행객들은 세계 곳곳의「레스토랑」에서 김치와 비슷한 채소요리들을 찾게된다. 신통할 이 만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김치와 비슷한 어떤 음식을 먹고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의 「옌차이」 (암채) 는 소금에 절인 야채를 말하는데, 생강·마늘·회향(茴香)·산초 고추·깨 설탕등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맵고 향긋하고 강렬한 미각으로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준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다시 누룩에 절여 고추와 다시마를 곁들여먹는「옌라빠이차이」(염속백채), 무우·오이·갓·양배추를 식초에 버무렸다 먹는 「산라예차이」(산속야채) 이 속을 발라내고 안에 양배추·생강·마늘·고추등 양념을 넣었다 먹는「옌라황과」는 모두 담근지2, 3일 후에 먹는 김치들. 중국김치는 복잡한 향신료의 배합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북구의 것이 우리김치 비슷>
일본의 식생활은 생선과 채소가 주가 되기 때문에 야채를 소금에 절여 오래 두고 먹는「쓰께모노」가 발달했다. 그늘에서 이틀쯤 말린 배추를 나무통에 켜켜로 소금을 뿌려 담고 묵직한 돌로 눌러 둔 후 1주일 후부터 먹기 시작하는「하꾸사이쓰께」 (백채청) 는 보름쯤 두고 먹는게 고작이라 자주 담가야 한다.
한겨울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다꾸앙」 과「나라쓰께」「다꾸앙」 은 시들시들하게 4, 5일 말린 무우를 쌀겨와 소금을 섞어가며 나무통에 담고 눌림 돌로 눌려놓은 후 20일부터 먹는다. 가지, 무우잎, 푸른나물, 양배추, 월파, 수박껍질등도 쌀겨와 소금에 절여두고 먹는다.
서양에는 신선한 야채를 그대로 각종「드레싱」에 버무려 아삭아삭 소리나게 먹는「샐러드」가 야채요리의 대부분이지만, 오이·푸른「도마도」·「캐비지」·「올리브」등을 제철에 따서 향료와 식초에 절여두고 먹는「피클」이 김치를 대신한다.
북구의 독일에서 해먹는「사우어크라우트」는 우리나라 김치하고 아주 비슷하다.「캐비지」를 길게 채쳐서 독에 담고 소금을 켜켜로 뿌려 보자기를 덮고 나무 판대기를 눌러뒀다 한달 후부터 먹는데 10월부터 3, 4개월 동안 겨울식품이 된다.

<수분조절로 기호에 맞춰>
세계의 김치 담그는 법에서 맛을 좌우하는「키」는 소금과 눌림돌. 채소의 결과 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절여지게 하는 소금의 분향과 채소의 수분을 조절하는 눌림돌의 무게가 맛있는 채소 저장요리의 비결이다. 이것을 잘 맞추는 주부의 솜씨에 따라 각 가정의 김치 맛이 독특해진다.
우리나라 김치 맛은 이외에 양념 맛이 중요한 역학을 한다. 음식 재료를 재료 그대로 먹지 않고 복잡한 양념을 쳐서 먹는 것은 미각의 발달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국민성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글 장명수 기자 사진 김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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