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용나쁜 나라 돈 꾸기 더 힘들어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주요 선진국들이 빚을 못갚는 나라의 외채문제를 민간채무조정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신용도가 떨어지는 나라는 돈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채무조정 결과에 따라 채권자가 원금을 떼일 수도 있어 신용도가 낮은 나라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비싼 이자를 요구하거나 아예 돈줄을 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6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전세계 1백84개 회원국을 보유한 IMF와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기업 도산절차를 국가 부도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금융계에서 국가채무 조정에 관한 논의는 '국가채무조정장치'(SDRM.Sovereign Debt Restructuring Mechanism)와 '집단행동조항'(CAC.Collective Action Clause) 등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SDRM은 채무국의 채무를 일시적으로 동결해 금리를 낮추고 상환기간을 늘려 채무를 재조정하는 제도로 부도에 몰린 국가의 채권 금융기관 가운데 75% 이상이 동의하면 반대한 채권자도 의무적으로 합의안을 따라야 한다.

미국이 적극 지지하는 CAC는 국가채무 전체에 대한 재조정 작업인 SDRM과 달리 특정채무에 대한 채권자 그룹이 채무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도록 소수 채권자의 소송제기 등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할 때 이런 내용의 집단행동 조항을 미리 삽입해 놓으면 위기 때 채권자 간의 내부 잡음을 줄여 신속하게 채무재조정 작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 금융거래의 경우 부도에 처한 기업뿐 아니라 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금융기관들도 손실을 분담하는 원리를 국가 부도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에 대한 법정관리제'나 '국가에 대한 워크아웃제'인 셈이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모든 채권자는 채무국이 국가채무 조정을 신청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으므로 돈을 빌려주는 단계에서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국가에 이미 돈을 빌려준 경우는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조기 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IMF 등의 국제 논의에서 국가채무재조정체제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SDRM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8년 초 외환위기 당시 이같은 국가채무조정 절차가 없어 채권단과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만기를 연장해 가까스로 국가 부도의 위기를 넘겼다.

국가채무재조정방식은 오는 20~21일 독일 베를린 회의와 3월 9일 프랑스 파리 G20(서방선진 20국) 차관급회의를 거쳐 4월 IMF 금융위원회 전까지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허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