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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운동40주년에 붙여|학생운동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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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은 한국학생운동의 기념할만한 해다. 우선 동경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운동과 국내「3·1만세」운동의 50주년이 금년이요, 또11월3일은「광주학생운동」의 40주년에 해당 되는 해다.
그런데 역사가 깊어가고 전통이 쌓여 갈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워져야 할 학생운동이 자꾸 희미해져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금에 이르러 우리는 이 학생운동을 위하여 기념식 조차 변변히 갖지 못하였던 것이 아닌가? 산상에 세워진 비문과 같이 풍마세우의 운명을 당해야할 학생운동이었던가? 대한민국이 선 뒤 1953년10월에 11월3일을 〈학생의 날>로제정한 것은 단지 일제하의 학생운동의 광영과 고난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던가? 그 당시 그 날은 일제의〈명치절〉이었고 우리로서 보면 음력 10월3일〈개천절〉에 해당되는날이었다.
단지 역사의 한「페이지」에 적어두는 이상으로 월역에 새겨놓고〈학생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은 그때 그 정신을 길이 보전할 뿐만 아니라 되새겨 새롭게 하자는 뜻에서가 아닌가? 그것은 무슨 뜻에선가?
한국학생운동은 전체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 사상에 의해서 일어났다. 그것은 학생운동이일제하에서 자라났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에 있어서도 민족적인 위기가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학생운동의 저류는 민족주의 사상이 아니 될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한국학생운동은 예나이제나 민족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8독립선언」이나 「3·1운동」에 있어서의 『국권회복』이니 『독립만세』니 하는 구호와 「광주학생운동」에서 보는 『제국주의타도』나 『피압적 민족해방』등의 구호, 그리고 「4·19」이후 「3선 개헌」반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학생운동이 민족운명의 위기의식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말하자면 요새「프랑스」나 미국의 학생운동과는 달리 민족생존여부의 극한상황에서 일어난 원천적인 학생운동이라고 하겠다.
이제 우리는〈학생의 날>을 당하여 지난날의 「광주학생운동」의 의의를 몇 가지로 생각해보자. 이 운동은 실로 미미한 사건에서 발단되었다. 광주와 나주사이의 통학열차 안에서 한국여학생이 일본남학생으로부터 받은 모욕에서 시작된 것이나, 이것을 한국학생 내지 한국민족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직결시켜 5개월 동안 1백49개교의 학생5만4천명이 가담하여 전국적으로 일으킨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일제 하 최후최대의 학생운동이었는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 규모의 크기가 「3·1운동」과 방불한 바가 있고 그 독자성과 자율성에 있어서는 「2·8독립선언」과견줄 수 있는 학생운동의 백미라고 하겠다. 더구나 서울의 이화, 배화, 덕성, 숙명, 정신 등 여중학생들이 전부 가담했다는 것은 「광주학생운동」이 얼마나 일제에 항거한 민족운동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일은 「2·8」 또는 「3·l」의 학생운동은 고등교육을 받던 학생들이주체가 되어있었는데 「광주학생운동」은 중학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래는 보통 (국민)학교학생에서 위로는 전문학교와 경성제국대학생 (한국학생)에까지 이르렀던 운동이다. 그리고 대개의 학생운동은 서울에서 일어나 지방으로 퍼져 갔었으나 「광주학생운동」은 「4·19」운동과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일어나 서울 기타 대도시로 번져갔던 점에서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하고 『반제』니 『해방』이니 하는 새로운 구호가 나타났다.
이것은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독립만세」대신에 사회주의사상에 근거한 일본제국주의 반대와 약소민족의 해방을 강조한 것이다. 그 방법의 차이는 있었을망정 모두가 민족주의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이제 일제가 물러간 오늘 이 시점에서 학생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옳을 것인가? 미군정시대의 반탁운동에서 대한민국성립 부정·부패·독재에 대한 학생들의 항거운동, 그 모두가민족운동과 결부된 점에 있어서 높이 평가되어야 옳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학생운동을 사할시하여 온갖 방법으로 이를 억압하고 버릇을 고쳐주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그만큼 학생들의 민족정신과 정기를 말살하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 아니 되겠는가?
만일에 학생들이 좌절감을 느끼게 되던가 혹은 그들의 저항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요새의 외국학생모양으로 이질적인 사상에서 그 힘을 빌어온다면 그 잘못이 위정자에게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고대교수 김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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