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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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윌드·컵」축구 서울예선전의 결산서는 의외의집계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관중은 총12만명, 이중 무료입장이 5만명―.41%가 공짜구경을 한셈이다.
이 경기의 관람료는 「사이드」석이 5백윈, 중간석이 6백원이었다. 입장료가 어느때없이 비싼것은 그 만큼 「골드·게임」임을 말해 준다. 공짜 입장객을 3등관중으로 계산하면 무려 2천5백만원에 달한다. 정문을 공짜로 「패스」하는 실력(?)이면 설마 3등석에 앉아 구경을 했을리는 없다. 따라서 당국은 무려 3천만원의 피해를 본셈이다.
사리로 보아 주최측의 직무태만을 나무랄수는 없을 것같다. 공짜 관객의 대부분이 불량배가 아니면 기관원(자칭)이었다고 한다. 불량배의 협박을 이기지못한것은 임석경관의 무능력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자칭 기관원을 막아내지 못한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더구나 수만명에 해당하는 「기관원」이 모든 직무를 저버리고 축구장에만 모였을 턱도 없다. 문제는 「자칭」의 정체이다.
이것은 몇가지 흥미있는 의문을 던저준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기관원」이면 유료입장도 무료로 할수있는가. 웬 기관원이 그리도 많은가. 수표인의 직책과 기관원의 직업과는 어느 것이 우선인가. 41%의 비율은 모든 공인요금을 무시하는 공짜족의 사회적 비율일까. .철도요금·「버스」요금·주차요금·유료도로통행요금등등….
「프랑스」의 우스개 얘기중에 이런것이 있다. 열차 1등간에서 열차승무원이 차표를 조사하고 있었다. 이때 한 여객이 그의 곁으로 와서 『저 사람은 3등표를 갖고 있다.』고 일러준다. 과연 그는 3등손님이었다. 좇겨난 것은 물론이다. 종착역「플랫폼」에서 그 두 승객은 우연히 마주쳤다.
『여보, 당신은 내가 3등인줄을 어떻게 알았소?』
『아, 제가 가진 표의 색깔과 똑같더군요.』
공짜를 좋아하는것은 「프랑스」시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다른것은 직업을 자칭하진 않는다는 사실뿐.
결국은 사회의 공중도덕심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똑같은 민주시민이면서 누군 공짜로, 누군 유료로 하는것은 말도 안된다. 한쪽에서 그런 공중의 약속을 짓밟을때 다른 한 쪽만의노력으로 그것은 지켜질수 없다. 민주사회의 약속은 누구나 공평하게 지키는데 뜻과 값이있다.
월남 이상재선생은 전차를 타면서 미처 표를 내지 못했을때에는 내려서 한장의 표를 꼭찢어 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공중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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