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소풍의 「에티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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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월 초가을 쾌청한 일기에 사흘동안의 수학여행을 했다. 학생처럼 마음이 들떠 준비하다가 선배동료로부터 초년생이란 핀잔까지 들었다. 하옇든 가벼운 흥분으로 여행을 맞았었다. 차안에서의 학생들의 명랑한 재잘거림, 노래소리, 웃음소리에 마음을 풀고 「코스모스」핀 시골길과 맑은 강줄기, 산골짜기를 휘도는 고갯길의 정경이 우선 여행의 맛을 나게 했다. 정숙한 언행이 습관화된 학교생활과 달리 고성, 괴성으로도 들리는 여관에서의 소리가 오히려 발랄하게 느껴지고, 색색의 자유복 차림이 더욱 활달하게 보였다. 산을 오르 내리는 좁은 비탈길에서 서로 손 내밀며 도와주려는 마음씨가 한결 다정하고 기특했다. 언제 질서있게 정답게 명랑하게 가라고 잔말 한적 없건만 그다지도 학생 한명 한명의 모습이 곱게 돋보인건 대자연에서 누구나가 가질수 있는 태도 때문이 아니라, 여태껏 교단에서의 시간밖에는 별로 갖지 못한 내 교사로서의 태만 때문이리라.
언제 무엇때문에 그들을 책망해야 했던가. 무엇때문에 싫다 했던가.
단체생활에서의 사소한 불만과 투정도 그런대로 들어주고, 실수를 저지른 앞에서도 담담해질 수 있었다. 아마도 이번 기회에 새로이 학생을 알게 된 듯한 내 나름의 여유있는 마음이었나 보다.
요사이는 가끔 여행의 느낌을 되살려 언짢은 경우를 잘 넘겨 보려한다. 그때 여행에서의 그들의 모든 모습은 투정하는 모습까지도 아름답지 않았던가, 그들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래서 다음기회에 또 소풍을 가리라. 그러나 이번은 내 작은 욕심을 한껏 부려 보자. 다음 여행때는 경제적·건강상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야겠다.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훌륭한 국보」「선조들의 자랑스런 솜씨」로 전해들은 실물들이 자칫 엄청난 실망을 주지 않고 더 이상의 찬탄을 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 겠다. 또 그들 말대로 실컷 기분좋게 놀게하는 건전한 놀이방법도 알아야겠다. 공원지대를 어지럽히거나 지나친 소란을 떨어 그곳 주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에티켓」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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