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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과 한자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지난 9일과 10일, ⓛ초·중·고등학교 국어과 교과서에서의 한자교육의 전면적 삭제 ②인문계 고교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서의 한문교과과정 배정시간증가 ③대학교육과정에서 한문전공학과 설치권장 방침등을 밝힘으로써 이른바 「한글전용화계획」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을 보면 제 ①항을 통해 사실상 각급학교에서 한자교육의 전폐를 시도하면서 제②③항을 통해 당국이 결코 한자교육의 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변하려는 둣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학교 정규과정에서부터 1천3백자 정도의 상용한자에 접할 기회조차 전적으로 금지했다가, 중학교과과정을 뛰어넘어 고교교과과정에서, 그나마 선택과목으로 한문교육시간을 두게 했을 뿐아니라, 대학 교과과정에서는 국·한문 혼용이 무방하다든가, 독립된 전문학과로서의 성립조차 의문시 되는 한문전공학과의 설치권장을 운운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정책을 논하면서 무엇보다도 경계해야할 것은 그것을 민족의 주체성이니 우수성운운하면서 다분히 「애너크로니즘」적인 「모럴」문제와 결부시키려고 하는 미망이라 할 수 있다. 한글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문자는 그 나라 언어의 표기수단인 동시에, 그 나라 그 민족이 쌓아온 문화적 전통의 매개수단이라는 뜻에서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급 학교에서 자기나라 고유의 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까지 늘 배우고 익히게 하려는 것은 그러한 언어와 문자를 통해 널리 지식을 구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적 전통가운데 본받을 것을 흡수, 동화시키게 하려는 배려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수천년 동안 한자문화권에서 이룩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의 단절없는 계승을 위해서는 싫든 좋든 한자문화의 이해, 습득이 불가결한 요청임은 물론, 한걸음 더나아가 우리문화의 보다 폭넓은 발전을 위해 우리하고는 전혀 생소한 외국어까지 각급 학교에서 정규 교과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학교과과정에서부터 가르치는 영어는 그 학습자가 평역한 문장과 일상적인 회화를 가능하기 위해서도 최소한 약3천만어의 반복적 학습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6시간 이상씩의 계속수업으로 6년간의 중등교육과정을 마친 대다수 학생들이 여전히 영어원전에 접할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외국어 교수법상의 개선점을 시인한다 하더라도, 언어교육의 실시시기와 그 시간문제와 관련된 것이라 할 것이다.
학습상 하등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그로써 도리어 고급학습능력증진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1천3백자 정도의 한자교육을 초·중등의 전 교육과정에서 전폐케하고, 대학과정에서부터나 새로 학습케 한다는 것은 그 이상 비교육적인 언어교육정책이 따로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란이 누차 지적한바와 같이, 정부는 모든 공용문서의 한글전용화등 한글사용의 다원화를 기하는 것과 한자교육의 전폐를 혼동시 하려는 착각을 단연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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