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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파업의 역사 (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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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시즌 중반을 넘긴 현재,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새미 소사와 배리 본즈의 대결이나 월드시리즈 우승팀에 대한 예상이 아니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파업을 앞두고 있다. 파업=끝장이라는 공식을 이해한 노조와 구단들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고 있다.

이번 선수노조와 구단간의 쟁점은 사치세 도입이다. 선수노조측은 팀 총연봉에 대해 과도하게 사치세를 부과하는 것은 자연적인 연봉 상한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선수들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이저리그의 양자대결구도는 메이저리그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이어왔다.

1869년 최초의 프로야구단인 신시네티 레드스타킹스가 탄생한 이후 야구가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잡은 것은 1880년대다. 양측의 대결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 문제가 됐던 것은 보류조항. 한 팀에 소속된 선수는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구단의 소유였고, 트레이드 거부권도 없었다. 이에 대해 반기를 든 선수들은 2차례나 '플레이어스리그'라는 독자리그를 만들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선수들은 보류조항에 묶인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가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46년 조직된 협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66년 선수협의회는 철강노조에서 경제자문으로 있던 마빈 밀러를 전무이사로 영입했다.

밀러의 영입은 일대 야구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야구역사상 최초의 단체협약을 이끌었고, 협의회를 노조로 만들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였던 커트 플러드의 트레이드 거부로 인해, 자유계약제도를 이끌어 낸 것도 밀러의 솜씨였다.

플러드는 자신이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로, 당시 커미셔너였던 보위 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비록 패했지만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자유계약 제도를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 됐다.

덕분에 72년 LA 다저스 소속이던 앤디 메서스미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데이브 맥넬리는 최초로 자유계약의 혜택을 누리는 선수가 됐다.

그러나 선수노조의 파업이 모두 성공적이였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 94년의 파업. 한치의 양보없는 파업은 관중수 격감이라는 실패를 맛봤다.

파업으로 떨어진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리그, 와일드카드제 도입등 부단한 노력과 더불어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경쟁등 '운'이 없었다면 관중수 회복은 힘들었다는 중론이다.

올시즌 파업을 놓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다.

(계속)

Joins 유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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