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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보험 아까워 정밀검사 받는 세상…'꽁돈'의 의료학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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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전문의,‘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저자

세상에 꽁돈이 넘친다.

◆ 어느 지역에서 병원과 주민들이 연합해서 짜고 거짓으로 입원을 등록하여 수년간 수억의 '의료보험료'를 허위청구 하다가 적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 어느 어린이 집은 다니지도 않는 아동의 주민번호를 허위로 등록하여 '정부지원금'을 많이 타갔다고 한다.
◆ 어느 정부부처의 공무원은 쓰지도 않은 '활동비'를 수년간 허위로 청구하여 부당한 돈을 빼 썼다고 한다.
◆ 어느 지방도지사는 '공금'을 허위문서를 만들어 횡령했다고 한다.
◆ 어느 대학교수는 '연구비'를 타다가 개인 생활비와 유흥비로 썼다고 한다.
◆ 모 시의회 의원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공적 목적도 없는 호화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 어느 남자는 '합의금'과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다고 한다.
◆ 어느 사람들은 '실비보험' 들어 놓은 게 아깝다고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해서 이것 저것 정밀검사를 원한다.

세상에 보험이 넘친다. 진료를 하다 보면, 어떤 날에는 세 명에 한 명 꼴로 소위 보험회사 제출용 진단서라는 것을 떼러 온다. 세상에 이다지도 사보험 든 사람들이 많은가. 한 번은 실비보험 든 게 있다는 어느 중년 환자에게 물어 보았다.

"우리에겐 나라에서 하는 전국민 건강보험이 있는데 왜 굳이 매달 따로 돈을 들여가며 그런 보험을 들고 계세요?

"아유, 어림없어요. 큰 병에라도 걸려 봐요. 건강보험이 된다고 해도 드는 돈이 얼마나 많은 데요. 웬만한 재력으로는 못 버텨요. 순식간에 집안 거덜 나고 자식들한테 못할 짓 하는 게 되지요."

두레, 향약, 계, 품앗이 등등 예로부터 우리 조상에게는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상부상조의 좋은 제도가 많았다. 현대 들어와 지역공동체가 와해되면서 이런 좋은 풍습도 함께 사라졌다. 그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게 서구식 보험회사들이다. 평소에 조금씩 돈을 내놓고 큰 일이 닥치면 목돈을 챙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대비 환산하여 보험금을 정하기 때문에 붓는 액수와 기간이 만만치 않고, 돈을 내어 줄 때가 되면 별의별 조건이 등장하므로 어지간히 까다로운 게 아니다. 물론 회사는 계주이므로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2005년에 드러난 '민간의료보험 확대 전략'라는 제목의 국내 모 보험회사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이 궁극적으로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전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인 보험이 되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6단계 전략을 짜놓았는데 다음과 같다.

1단계: 정액방식의 암 보험
2단계: 정액방식의 다질환 보험
3단계: 후불방식의 준 실손 의료보험
4단계: 실손 의료보험
5단계: 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 의료보험
6단계: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의료보험
이상이 등 공저,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중에서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약 4단계와 5단계 사이쯤에 와 있는 것 같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전국민 의료보험은 부자들은 다 빠져나간 자리에 민간보험을 차마 못 드는 가난한 사람들만 남아 끼리끼리 돕는 소위 '민망한 보험'으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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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박사 기자 osgirl@korea.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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