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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수해|참화의 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밤사이 물벼락을 만난 부산·울산·김해·마산·창원·여수등 남부지방은 갯가마다 골짜기마다 참사가 현저했다. 삽시간에 일어난일이기 때문에 가족과 가재도구를 몽땅잃은 수재민들은 아침·저녁의 쌀쌀한 추위에 떨고있다. 수마가 할퀴고간 참사의 현장은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새벽 불공」의 여승 11명모두떼죽음>
【부산】 15일새벽2시쯤 부산시 동래구 온천2동 금정산금석암 천태암등 두절간에서 새벽불공을 드리던여승등 11명이 떼죽음을 당한골짜기는 이날밤 억수같이 쏟아진비의 탁류때문에 산사태에 덮쳤다.
이날 금선암에는 임천수여승(21)과 강보배여인(54·부산동구범오동 4통9반)등 착실한신도들은 염주알을 굴리며 새벽염불을 외다 천둥같은 소리를내며 암자를덮쳐누른 산사태에 파묻혔으며 이웃방에서 고시수험준비를 하고있던 최광식(27·부산시중구동광동5가47) 고영조씨(32·부산시영도)등 2명도 참변을 당했다. 이를은 둘다 서울대법대를 졸업, 고등고시시험을치르기위해 6개월전부터 이암자에서 시험공부를 해왔다.
또한 아랫마을 외딴집 김학출씨(47·동래구온천2동1650)는이날밤의 폭우가 심상치않아 삽을들고 집뒤언덕을 손질하다 두절간을 삼킨계곡의 탁류로 잠자던세자녀를 흙탕물에 잃었다. 16일하오 사직동 시체안치소에 비보를듣고 달려온 유족들가운데 박연실노파(78)는 80평생 처음당하는 홍수라고.

<5백m뒷산무너져 500여가구가 흙에묻혀>
【김해】13명의사망자와 3명의실종자를 한꺼번에낸 김해군 김해읍 삼방동 3구 『개미마을』은 흘러내린 토사로 흡사늪지대 같았다.
날이새자4H「클럽」회원과 향토예비군등 40여명의 마을청년들이 무릎에서 목에까지 차는진흙속을 온종일뒤져 강선철씨(40)등 한가족4명등 12구의 시체를 발굴, 활천국민학교에 안치했다.
「도마도」재배를 주업으로삼고있는 이마을은 이날높이5백m나 되는 뒷산의 비탈이 무너져내려오면서 한마을 48가구중25가구가 완전히 흙에파묻혀 30여명의 중경상을 냈던것

<가재도구 건지다가 1개월갓난이 잃고>
【여수】 30여명의 인명피해를낸 여수시내의 물난리도 캄캄한밤중에 일어난 뜻밖의참사.
이날 새벽깊은잠에 든 연등천변 서교동·충무동등의 주민들은 개천물이넘쳐 집안으로 밀어닥치자 잠에서 깨어났으나 정전으로 안팎을 분간못한채 가구를 꾸리고 어린이들을 구하느라고 허둥대다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급류에 휩쓸렸고 지대가낮은 교동·남산동등 11개동의주민들은 자던옷차림으로 어린아이들을 등에업고 닥치는대로 가구를이고 지고 집을빠져나오느라고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서교동9반 김학성씨는 잠에서깨어나 가구를 들어내느라고 정신을팔다가 생후1개월된 아들을 그대로 잃었고, 충무동14반이성순군(6)은 혼자서 뛰어나오다가 급류에 휩쓸렸다. 충무동50반 김영수씨(42)는 집안의 물을퍼내다가 한가족7명등 어린이2명만 남기고 모두집과 함께떠내려갔다.
또 결핵성관절염으로 다리를 못쓰는 서원일씨(54·서교동23반)도 부인과딸등 7명이 피난했으나 막내딸영선양(6)과 함께집에갇혀있다가 물이목까지 넘치자 영선양을 등에업고 궤짝을포개밟고서서 천장을 뚫은다음 목을내밀면서 3시간동안이나 물속에잠겨있다가 구조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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