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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또 수갑 풀고 도주 … 매뉴얼은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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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

지난 16일 김모(47)씨가 서울 상월곡동에서 절도를 하다 현장에서 검거됐다.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던 그는 지구대 앞에서 도주했다. 김씨는 당시 왼손 수갑을 풀고 기회만 노리고 있었지만 담당 경찰관은 알지 못했다. 경찰관은 피의자 김씨를 순찰차 밖에 혼자 세워 뒀다가 일을 당했다. 다행히도 경찰은 도주 27시간 만인 17일 오전 김씨를 다시 붙잡았다. 이로 인해 경찰의 부실한 피의자 관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피의자가 수갑을 풀고 도주한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조사를 받다 탈주해 26일간 전국을 누빈 이대우(46), 전북 전주에서 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강모(30)씨까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지난해에는 성폭행범 노영대가 탈주했다. 국민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노영대 사건 이후 경찰은 ‘도주 방지 매뉴얼’까지 만들어 현장에 배포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번 사건에서도 현장 매뉴얼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 2월 경찰청이 배포한 ‘절도 예방 및 현장조치 매뉴얼’에는 손목이 얇은 피의자가 수갑을 빼는지 수시로 확인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씨는 경찰관에게 “손목이 아프다”며 수갑을 헐겁게 채워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도주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또 경찰관은 김씨가 순찰차에서 내릴 때 바닥에 5만원권 한 장과 1만원권 여러 장 등 현금을 떨어뜨리자 그걸 줍느라 바빴다. 그 사이 노상에 서 있던 김씨는 달아났다.

 김씨 도주 후 경찰의 태도는 더 실망스러웠다. 지구대를 책임지는 관할 경찰서는 통상 하던 언론 브리핑도 하지 않았다. 쉬쉬하며 덮고 넘어가려는 분위기였다. 경찰서 고위 관계자는 “지구대에서 잘못한 일을 왜 경찰서에 자꾸 묻느냐”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구대마다 지급된 현장 대응 매뉴얼을 공개하라고 요청하자 “내부 문건”이라며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치안인력은 심하게 허비된다. 관할경찰서는 16일과 17일 오전까지 김씨 검거를 위해 200명을 투입했다. 이대우 사건 때는 전국적으로 2만5000여 명, 전북 전주의 강씨 탈주 때는 500명이 동원됐다. 정작 필요한 곳에 경찰인력이 닿지 못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선량한 다수 경찰의 사기도 떨어진다.

 이번 도주사건은 기본 매뉴얼만 제대로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다. 절도범 김씨를 처음 붙잡아 신고한 건 집주인이었다. 시민이 잡은 도둑도 놓치는 경찰에게 생명과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