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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화상경마장 딜레마 … 주민 vs 마사회 '35m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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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는 10월 학교정화구역 인근으로 확장 이전 예정인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왼쪽 사진)을 둘러싸고 한국마사회와 지역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오른쪽은 화상경마장 이전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성심여중·고교 정문. [김성룡 기자]

용산역 2번 출구 서쪽 방면에 있는 ‘마이웨딩홀’ 건물. 이 빌딩 2~6층엔 한국마사회 용산구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이 운영 중이다.

 15일 찾은 이곳은 전날 열린 화상경마의 여파가 그대로 느껴졌다. 바닥 곳곳엔 물에 젖은 마권구매표 OMR카드, 5만~8만원이 찍혀 있는 영수증 뭉치가 수백 장씩 버려져 있었다. 입장객이 피운 담배꽁초도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먹다 버린 음료수통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매표소와 화상 중계장(3~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매우 지저분했다. 담배냄새와 술냄새, 심지어 노상방뇨 흔적도 보였다.

 한 청소원은 “주말마다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대낮에 주차장 한쪽에 앉아 노상 술판을 벌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이 화상경마장을 인근에 지하 7층, 지상 18층 빌딩을 지어 이전할 계획이다. 신축빌딩은 내부 마무리 공사만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이전을 둘러싸고 지역민과 관련 지자체, 마사회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전계획을 취소하라며 마사회와 용산구를 압박하고 있다. 마사회는 “이전 과정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전반대 주민비상대책위는 16일 용산을 지역구로 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역구 사무실을 찾아 “화상경마장 이전을 막아 달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지난 13일에는 이전 예정지 앞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를 벌였다.

 화상경마장은 경마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마권을 구매·베팅할 수 있도록 현장 중계가 가능하게 만든 시설이다. 전국에 30곳이 운영 중이고 이 중 10군데가 서울에 있다.

 마사회 용산지부는 현재 용산역에 위치한 화상경마장의 사용계약이 올 10월 만료됨에 따라 전자랜드 옆으로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는 방안을 2009년 말부터 추진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건물 완공을 4개월 앞둔 올해 5월에야 이전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구역 내 이전할 경우 주민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농축산식품부의 2009년 3월 내부 지침이 근거가 돼 공청회나 설명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박장규 전 용산구청장은 임기 만료 하루 전인 2010년 6월 30일 건축허가를 내줬다.

 이전 지역 인근에는 6개 유치원·초·중·고교가 있다. 학교보건법상 학교에서 반경 200m는 유해시설이 들어오려면 지자체의 심의를 얻어야 한다. 마사회 건물은 가장 가까운 성심여고 교정에서 직선거리로 235m 떨어져 이 기준을 벗어났다. 이 학교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다(1970년 졸업). 성심여고 성백영(57) 교감은 “학교 자체 조사결과 성심여중·고 학생 2000명 중 150명이 마사회 건물 앞 버스정류장을 주 통학로로 이용해 학생 안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용산구청은 지난 8일 마사회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서지 않도록 자진 용도변경을 요구했다. 농식품부에도 이전 승인을 철회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지난 6월 “마사회가 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후 장외발매소를 개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마사회는 반발 움직임에 크게 당혹해하고 있다. 김삼두 한국마사회 장외기획팀장은 “시설이 낡아 장외발매소 이용객들도 불편하고 경마에 대한 인식도 나빠진다”며 “경마 관람 문화 향상을 위해서라도 확장 이전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사회는 다른 장외발매소 입장료는 1000원이지만 새 용산지사는 1만~3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관람 서비스를 대폭 향상한다는 구상이다. 지저분한 도박장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마사회는 용산지사 이전을 위해 약 1200억원을 투자했다. 최원일 한국마사회 홍보실장은 “용산지사 이전이 불발될 경우 앞으로 막대한 경영 차질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마사회는 또 신축 화상경마장이 교육환경을 저하시키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접학교 반경 200m 밖에 있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을 벗어났고 12차로 한강대로가 성심여고 등 학교 및 주택가와 신축 용산지사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경마가 금요일과 주말에 열리고, 학생은 발매소에 출입도 안 된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이전 예정지 주변 상인들은 화상경마장 입주가 무산되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신축 마사회 건물 옆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주성모(59)씨는 “화상경마장이 들어선다기에 최근 1500만원을 들여 가게 리모델링까지 했다”며 “용산 전자상가 상권이 예전 같지 않아 힘든데 이전이 무산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글=이해준·이유정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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