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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스승을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젖을 먹여 길렀다면 아마도 목격하지 않고는 믿기 어려울 일이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목격한 사람의 하나이다.
원불교 종로 지부에서 있었던 얼이다. 교당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얼마후 어미 떨어진 강아지 한 마리가 그 곳에 입주하게되자 교무선생님 두 놈을 앞에 놓고 타일렀단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한집안 식구이니 싸우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하며 번갈아 쓰다듬어 주었다. 강아지는 고양이 품으로 어리광스럽게 기어들었고 고양이는 그를 다정하게 받아 젖을 주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몇 주일을 고양이 젖을 먹고 밥도 한 그릇에서 먹으며 자랐다.
한 그릇에서 먹되 어미고양이는 으레 강아지에게 양보하고 물러서 있다가 나중에야 먹곤 하더란다.
사람도 지키기 어려운 경도의 예절을 동굴에까지 전도할 수 있는 신앙의 힘에 고개가 숙여져서 그후 나는 원불교 교전을 탐독하기에 이르렀다. 심금을 울려오는 귀절들이 많으며 어느덧 마음이 뒤숭숭할 때마다 그를 벗삼아 내마음을 달래는 버릇이 생겼다.
얼마전 원불교 제3대 종법사인 대산법사님께서 서울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뵙고 싶은 일념에 내 마음은 어린애처럼 설레었다. 일찌기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공자님 생존시에 태어나서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했음을 한스럽게 여기던 터인지라 장마 비도 무릅쓰고 기어이 우이동 산속으로 법사님을 찾아 나섰다.
법사님은 조그마한 온돌방에 도포로 정복하고 앉아 계셨다. 나는 약 반시간쯤 의담하면서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
법사님은 앉으신 채로 인사를 받으셨고 악수조차 없었건만 그 인자하신 눈초리에서 나는 최고최대의 환영사를 읽을 수 있었다. 몇 마디 안되는 조용한 말을 교환하는 가운데 그분의 높으신 덕과 한량없이 크신 마음과 꿰뚫는 혜지와 무량한 자비심을 전신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꽤 긴장했던 내가 어느덧 친부모님 앞에 앉은 기분으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꿇었던 무릎이 저절로 풀리고 다물었던 입에서 말문이 트이고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듯이 반가운 마음으로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도인의 위력인가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나라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종교인 기타 각종 지도자를 수 없이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한가닥 실망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대산법사님 한테서 비로소 참스승을 만난 기쁨을 금할 수가 없다. 인간의 본래 있어야 할 모습을 아련하게 그리며 노력해왔으나 영 힘만 들고 낙심될 때가 많았다.
이제 참스승을 만나 뵈니 희망과 용기가 백배임을 느낀다. 주정일<서울대강사·아동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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