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鬼胎’ 막말 파문이 남긴 교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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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호 02면

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막말 파문이 이틀 만에 봉합됐지만 후유증은 작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구태(舊態)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여야는 13일 원내대표 회동에서 귀태 막말 논란을 마무리하고 국회를 정상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전날 홍 전 원내대변인의 사과·사퇴와 김한길 대표의 유감 표명에 대해 “여러 가지로 미흡하지만 여당으로서 짊어진 책무를 감안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회 공공의료 국정조사 특위는 이날 마지막 전체회의를 열었고, 국회 운영위도 15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하기로 했다. 이번 여야 합의는 정치권 파행이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덜어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제 얼굴에 침 뱉기’식의 막말 공방은 끝내겠다는 정치권의 다짐이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상대 당의 대선 후보가 당선됐다 해도 결국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을 욕하는 건 국민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정치권에서 막말이 난무해 정치불신과 정치혐오증을 부채질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정부 때는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김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야 한다”고 했다가 모욕죄로 기소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개구리’ ‘노가리’라는 막말을 썼다. 야권과 시민단체 일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젠 이런 ‘증오 언어의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격언도 되새겨봐야 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일각에서는 최근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거론하며 ‘대선 불복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등 도를 넘는 발언이 잇따랐던 게 사실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역풍을 우려해 집안 단속에 나섰지만 결국 막말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독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다.

민주당의 유감 표명 과정도 짚어볼 부분이 있다.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게 아니다”라는 홍 전 원내대변인의 해명도, 김 대표가 직접 나서지 않고 당 대변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보다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를 보였더라면 국민들도 더 마음을 열고 ‘사과 문화’를 성숙시켰을 터다.

다행히 이번 파문은 단기간에 마무리됐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에서 막말을 퇴출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야는 최근 국회의원 영리행위 금지 등 정치쇄신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특권만 내려놓는다고 정치 선진화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내는 후진성과 단호히 결별할 때 정치문화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귀태’ 막말 파문이 안겨준 또 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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