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규 칼럼] 우리 내면의 이중성과 분열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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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호 30면

지난 3일, 대전의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본관을 들어서자 후텁지근했다. 실내 온도를 섭씨 30도로 맞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실·사무실·원장실이 다 그랬다. 비 오는 그날은 바깥 온도가 25도쯤이어서 안에서 견딜 만했지만 햇빛 쨍쨍한 한여름엔 어쩔 것인가. 그나마 대낮에 30도가 넘으면 2~3시간 냉방을 한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정부의 절전 방침에서 비롯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기자는 낯이 좀 뜨끈해졌다. ‘나는 냉방 잘되는 실내에서 기사를 쓰고 다른 민간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인데, 달 탐사를 추진하고 한국 우주산업의 미래를 짊어진 항우연 박사들은 찜통에서 연구하라는 게 온당한 일인가’. 에어컨을 틀어서라도 연구만 잘하라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격려할 수는 없는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느 여론조사를 보니 낙관적인 전망이 잘 안 선다.

 지난 2월 항우연은 전국의 19세 이상 1000명에게 설문 조사했다. 한국이 우주발사체를 만드는 데 응답자 중 84.2%가 지지했고 63.4%는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부담에 대해선 영 딴판이다. ‘그러면 얼마를 내겠느냐’고 묻자 1만원 이하가 63%로 가장 많았다. 우주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맥 빠지는 대답이다. 미국은 1인당 14만원, 일본은 3만원, 유럽은 5만원을 낸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우주 예산투자는 5000원 미만이다. 바라는 건 많아도 내 돈을 내긴 싫다는 얘기로 요약된다.

 내친김에 우리 내면의 이중성과 관련된 다른 여론조사를 보자. 지난 4월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전국 초·중·고교 교사 690명에게 온라인 설문 조사를 했다. 86%는 ‘사교육이 수업에 차질을 준다’고 했지만 다른 질문에선 52%가 ‘사교육이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93%는 ‘동료 교사가 자기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사교육 관련 상담 요청을 받았을 때 75%는 ‘사교육을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내면이 이렇게 혼란되고 모순된다니….

 이들 여론조사는 크게 부각되지도 않았고, 어찌 보면 우리 내면의 모순이나 불일치를 드러내는 가벼운 조사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곱씹게 되는 것은 ‘내 문제와 남의 문제’에서 태도가 확 바뀌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비약 같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도 그래 보인다. 그걸 내 문제, 다시 말해 ‘문제가 없다’는 시각에서 보면 노 대통령의 말은 ‘남북 평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반면 남의 문제로 보면 말에 시퍼런 날이 선다. 주변에선 “노 대통령의 말이 과하고 저자세이긴 해도 (NLL) 포기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꽤 된다. 그걸 헤아렸다면 새누리당은 ‘포기 맞잖아’라며 각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민주당도 ‘포기는 무슨 포기냐’며 버티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 사태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했었다면 그런 막말은 입밖에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의 그런 양상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 내면의 갈등과 분열을 반영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앞에선 대기업 때리기에 열을 올리지만 뒤로는 삼성·현대 입사에 목을 메는 게 취업전선의 현실이다.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면서 자식은 미국 유학을 보내고, 이마트가 ‘동네 상권 망친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재래시장을 멀리하는 모습이 그런 사례다.

 설문 조사 두 개를 놓고 탄식이 심하다고 하겠지만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미 해체와 파괴의 징후를 보인다’고 진단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개개인이 분열을 극복하고 시민의식을 높여야 하는데…해법이 너무 교과서적이라 답답하지만 다른 묘책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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