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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건축이 뇌과학에 묻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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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요즘 신경건축학이 주목받고 있다. 공간이 인간의 두뇌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좀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이다. 삶의 공간을 행복이라는 잣대로 다시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다. 폐쇄 공간을 줄여 개방성을 높인 다목적 기업 유니레버의 독일 사옥. [중앙포토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더퀘스트
423쪽, 1만7000원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된다”고 한다. 이 얘기는 누구나 쉽게 수긍할 만한 상식 같지만 오늘날 보편적인 병실 환경을 떠올려보면 우리 현실은 그 상식과는 꽤 멀게 느껴진다. 병원의 최우선의 가치는 환자의 치유다. 역사적으로 병원의 공간구조는 새로운 치료법이 고안되고 과학적 가설이 증명될 때마다 의료기술의 발달에 긴밀하게 대응하며 진화해왔다. 그 결과 현대의 병원 공간은 각종 최첨단 기구로 가득 차고 세분화된 처치실과 병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됐다.

 병실 창밖 자연풍경의 치유효과는 1984년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 박사가 과학적으로 증명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바 있다. 창밖에 자연풍경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다른 병실의 환자들보다 일찍 치유돼 퇴원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병원의 건축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건축가의 직관이나 사회적 통념이 아닌 과학적 근거로서 말이다.

 건축공간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는 건축가 본연의 직무지만, 과학적 측정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환경심리학이 대두한 후부터다. 그리고 최근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맞물려 뇌의 활동을 중심으로 건축공간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건축학이라고 한다.

 이 책(원제 Healing Spaces)의 저자인 정신의학자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는 2003년 여러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건축가와 함께 미국 신경건축학회(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를 창립했다. 본문의 곳곳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 학회의 탄생 과정과 참여 연구자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신경건축학이라는 아직 생소한 학문의 태동을 현장에서 보여주듯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만큼 유구한 건축학과 마음속 같이 어려운 신경과학의 조우는 다소 느슨하고도 엉뚱한 인연으로 시작한다. 17세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은 해부학자 토마스 윌리스와 함께 근대 의학의 큰 획을 그었던 해부학 도감 『뇌의 해부』에 삽화를 그렸다.

 그들의 협업은 단지 재미있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건축가는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상 속의 공간을 자르고 회전시키며 건물의 평면도와 단면도를 그린다. 해부학자는 몸 안의 공간을 자르고 관찰해 도식화 한다. 건물과 몸의 도면에 표현하는 것은 벽·지붕·세포·혈관 등의 물질적 요소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비물질적 현상, 바로 공간과 생명이다. 그들 관심의 교점이 뇌라는 것은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은 미국 라호야 소재 솔크연구소(Salk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면역학자인 조너스 솔크와 건축가 루이스 칸의 만남이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연구에 매진하던 솔크 박사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안고 이탈리아 아시시로 안식년을 떠났다. 이곳에서 머물며 받았던 영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솔크 박사는 그 장소의 힘을 믿었고 추후 연구소를 설립하며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그때의 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해 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1965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하는 생명과학의 메카로 자리 잡았고, 칸의 역작은 전세계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근대건축의 순례지가 됐다.

 이 책은 치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공간과 연결해보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저자의 통찰력 있는 화법은 건강과 행복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관통하며, 건축 그리고 공간을 다루는 새로운 태도와 가치를 일깨워준다. 독자는 건축학·뇌과학·생물학·심리학·의학·종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를 넘나들며 뇌와 마음과 공간의 연결선을 그리게 된다. 또한 현재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생동감 넘치는 고민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2010년에 신경건축학연구회가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뇌과학·심리학·인지과학·인간공학·건축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과 건축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풀 수 있는 연구 문제를 활발하게 모색 중이다. 행복에 대한 과학적 근거만으로 행복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갈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건축가와 과학자의 협업이 풍부하게 이뤄지는 곳,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흥미로우며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되는 곳, 그 곳이 바로 행복의 공간이다.

황지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황지은  서울시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보기술을 활용한 건축 디자인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 신경건축학연구회 창립회원. 저서 『과학 10월의 하늘을 날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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