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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미국과 포경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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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외국 호텔의 객실에는 거의 예외없이 성경책이 놓여 있다. 그 관례의 원조는 미국이다. 대통령 취임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가 그곳 아니던가.

달러화에 인쇄된 글도 그렇다.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알고보면 미국이야말로 종교국가라고 미국학 연구자들이 규정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란 시민종교인데, 유럽사회와 또 다른 성격의 시민종교는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탄생했다.

청교도 1백31명이 새 예루살렘을 찾아 대서양 횡단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 1620년. 거기서 맺은 서약들은 신천지 도착 뒤 교회라는 공간을 통해 준수.실천되기 시작했다.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을 쓴 토크빌 의 명언을 들어보자. "미국은 종교와 정부를 분리시켰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종교는 모든 제도 중 첫째의 정치제도다".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의 정신적 바탕을 분석한 신간 '미국의 정치문명'(삼인)의 저자 권용립 교수가 미 외교의 바탕에는 메시아적 열망이 짙게 깔려 있다는 주장을 편 것도 그 연유다.

그런 열정은 자기네들과 다른 나라(타자)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공격성.독선으로 표현된다. 얼핏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의 뒤에 숨어 있는 건국신화 회귀본능은 그토록 힘이 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지난 주 그 책을 리뷰한 김석환 논설위원이 권교수의 시각이 환원주의라고 꼬집은 점이다. '변함없는 미국성'이라는 옛 거울 하나로 미국의 전부를 들여다볼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환원주의 작업은 그게 미국이라서 가능하다. 역설이지만 미국은 가장 변화가 없는 나라다. 그들이 자랑하는 헌법을 봐도 그렇다. 1787년 필라델피아 협약에 의해 채택된 헌법은 지금까지 27차례나 개정됐다.

그러나 권력 구조, 자유로운 개인, 연방제 등 뼈대는 최초 헌법 그대로다. 혁명 이후 프랑스 헌법이 일곱차례 바뀐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헌법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이라는 주장(쥐스탱 바이스, '미국의 사회모델', 동문선)은 그래서 나온다.

어쨌든간에 이삼성 교수의 2년 전 책 '세계와 미국'(한길사) 이후 주체적 미국 읽기에 성공한 권교수의 저술은 이런 다양한 음미가 가능한데, 한켠에서 자꾸 궁금증이 솟는다.

문제의 그 '미국성'에 충실한 것은 태평양 건너 한국이 아닌가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런 주장에는 물증까지 있다니 허튼 소리만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물증은 한국 남성들의 포경수술이다. 알고보니 포경수술의 원조 역시 미국이다. 젊은이들의 수음(手淫)을 막겠다는 청교도적 이유로 포경수술이 유행했던 게 19세기 미국이다.

물론 지금은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혀지면서 포경수술 비율이 55%대로 급감했지만, 1%대 전후의 일본.스웨덴.노르웨이보다는 엄청 높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포경수술 비율(20대 99%)은 당당히 한국이다. 기독교 선교사의 영향 탓이다. 국제인권상을 받은 이 분야 전문가 두명의 '우멍거지 이야기'(김대식.박명걸 지음, 이슈투데이)가 제기한 사안이니 확인해 볼 일이다. 과연 한국이야말로 어떤 점에서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지도 모른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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