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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닉슨? 어떤 닉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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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논설위원

“리처드 닉슨과 닮았다.”

 오해 마시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닉슨은 닉슨이로되 ‘그’ 닉슨은 아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에게 던진 질문은 이랬다. “여의도는 진흙탕에 빠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와 무관한 존재로 여겨지고 높은 지지를 받는다.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되게 마련인데 그렇지도 않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결정했다지만 그만의 결정이었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만장일치로 추인하진 않았을 거다. 경제가 난리라고 오로지 경제팀만 비난받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이들 이슈가 대통령과 연결되진 않는다.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고도 정권심판론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마법’이 지금도 작동하는 셈이다. 이 같은 이례적 정치현상에 대해 물었다.

 “박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노회하다. 가부장적 스타일로 정치자본을 많이 쌓은 데다 야권이 계속 실수해 박 대통령이 구름 위에서 행동하는 게 가능했다.” 그의 답변이다. “유사한 사례가 있는가 ”라고 묻자 그는 닉슨을 떠올렸다.

 사실 닉슨은 세 가지 모습으로 소비돼 왔다. 그의 하야(下野)를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과, TV토론의 위력을 드러낸 젊은 존 F 케네디에 대비된 노쇠한 닉슨, 그리고 미·중 수교 등의 출중한 외교력이다. 숨진 뒤에야 복권됐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 평가가 압도적이다.

 안 교수가 얘기한 맥락의 닉슨은 그러나 훨씬 다면적이다(『민주사회와 정책연구』).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닉슨은 민주당의 진보 어젠다를 선점했다. “이제 우리는 케인스주의자”라고 선언한 데서 드러나듯 진정한 거대정부론자였다. 사회보장지급액을 대폭 증액했고, 전국민 의료보험까지 도입하려고 했다. ‘법과 질서’를 내세웠고, ‘침묵하는 다수’를 정치적으로 각성시켰다.

 리더로선 고독한 결단을 선호했고 통제에 집착했다. 주변에선 “닉슨의 첫 번째 부분은 무척 신중하고 상냥하고 다정다감하고 관대하고 친절하다. 두 번째 부분은 매우 치밀하고 교묘하고 교활하다. 세 번째 부분은 화를 잘 내고 복수심에 불타고 까다롭고 비열하다”(레이먼드 프라이스)고 봤다. 그는 장관 중심의 국정 운영을 표방했지만 실제론 철저히 백악관 중심으로 일했다. 의회는 경시했다. 대면 보고보다 문건 보고를 택하곤 했다. 기자회견 형식을 싫어했으나 여론을 정교하게 관찰하고 대응했다.

 인기는 많았다. 일부 우파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민주당을 희생양 삼아 너무 많은 것을 이룩한 닉슨에 대한 1960년대 반전세대의 복수”(『대통령의 조건』), “마녀사냥의 진짜 이유는 중산층 미국인에게 큰 인기가 있었기 때문”(『모던타임스』)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닉슨은 68년 대선에선 신승했지만 72년엔 압승했다. 선거인단을 512명이나 확보했다. 상대편은 불과 17명이었다. 닉슨 아래에서 비로소 ‘솔리드 사우스(Solid South·공화당에 반감 있는 남부 주들)’가 허물어졌고, 로널드 레이건 시대를 거치며 공화당의 텃밭이 됐다. 1877년 이래 민주당의 아성이 사라진 거다.

 안 교수의 말대로 이런 닉슨에게 박 대통령을 연상할 순 있겠다. 그러나 닉슨이 자주 거짓말을 하고 음험하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박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으로 여겨진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히려 주목하는 건 민주당의 처지다. 당시 미국 민주당 이상으로 한국 민주당도 곤궁해서다. 더욱이 한국 민주당은 1469만 표를 얻은 대통령 후보가 대선 불복종성 발언을 하지 않나, 정쟁을 하느라 사실상 장외투쟁 중이다. ‘노무현’이란 과거를 붙잡고 있느라 미래를 희생시키고 있다. 지리멸렬 그 자체다. 한국 민주당도 ‘솔리드 사우스’를 잃을지도 모를 위기다. 그런데도 워터게이트의 닉슨을 얘기하는 민주당 의원이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