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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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흰 천을 뒤집어쓴 두 사람이 키스하고 있다. 성장을 한 남녀가, 머리엔 사형수에게나 씌울 것 같은 흰 두건을 썼다. 제목은 ‘연인들’,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서른 살 때 작품이다. 그림은 지금 일본 모리미술관의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All you need is love)’전의 사랑 관련 작품 200점 중 하나로 걸려 있다. 1998년 미술품 컬렉터 리처드 자이슬러의 기증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이 그림은 ‘사랑’전 참여를 위해 도쿄로 왔다. 사랑이 넘쳐나는 이 전시장에 걸린 ‘연인들’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익숙한 사물들로 매끈하게 그려진 이미지는 명쾌했고, 그럼에도 신비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그의 그림이 영화로, 음반 재킷으로, 소설 표지로(국내에서는 김영하의 『빛의 제국』) 사랑받았을 거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1928, 캔버스에 유채, 54×73.4㎝,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마그리트는 보는 것이 굳혀놓은 상식의 오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은폐된 진실에 끊임없이 다가서려 한 화가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거나(‘이미지의 배반’), 낮과 밤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린(‘빛의 제국’) 것들이 잘 알려져 있다.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익숙한 이미지들이지만, 이전엔 아무도 그리지 못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이상한’ 그림들을 그렸을까.

 그의 세대는 20세기 초의 여러 지적 혁신, 그리고 세계대전으로 비이성적이고 잔혹한 세계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론 어머니의 불행한 죽음도 겪었다. 양복 재단사 아버지, 모자 장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마그리트는 우리 나이로 15세, 중2쯤에 어머니를 잃었다. 강에 투신한 어머니의 시신을 찾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흰 잠옷으로 얼굴이 덮인 채 강물 위에 떠 있는 익사체,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선 얼굴을 덮은 이 그림을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연관짓기도 했다. 그립지만 무섭고, 결핍과 갈망의 대상인 어머니 말이다. 본인은 이를 터무니없는 추측이라고 일축했지만.

 숨막힐 듯 천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그림 속 두 사람은 그리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달콤한 무지. 그렇다, 사랑엔 맹목이 필요한 법이다. 사랑은 오해와 착각으로 가득하니까. 사랑할 때조차 우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어디 사랑뿐일까.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세계 역시 실은 착각이라는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마그리트는 역설한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