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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캄보디아서 돌아온 박정환소위 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행운의 날 4월3일>
4월3일, 그날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러키·데이」었다. 하오에 어디로부터 밀려왔는지 유달리 많은 「베트콩」들이 왔다. 그들은 어쩐일인지 텁수룩한 내수염을 깎아주기도 했으며 조그만 「캄보디아」산 「도마도」도 사주는등 몹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또 내게 한국노래도 청해 나는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러봤다. 그랬더니 놈들은 박수를치며 「앙코르」를 청해와 나는 또 「푸른하늘 은하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새삼 향수에 젖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베트콩」들도 몹시 언짢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날밤이었다. 언제나 3명의 「베트콩」이 나무궤짝위에 앉아 우리를 감시했는데 그날밤 따라 감시가 무척 소홀한 듯 했다. 내일이면 곧장 「하노이·코스」에 들어서는 것을 안 나는 『이밤을 놓치지 말자』고 결심하고 채씨의 옆구리를 쿡 찔러 탈출하자는 암시를 했다.

<끝내놓친 호송원 「안」>
「정글」속 어두운 밤에 고요가 내리깔렸다. 밤늦도록 여자들과 어울려 노래와 춤을추며노닐던「베트콩」들은 모두 녹초가되어 깊은잠에 곯아떨어지고 있었다. 짐칫 옷을 바꿔입고 잠자리에 드는체했던 우리는 자라목처럼 목을 내밀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주위엔 우리의 감시임무를 맡고있는 보초병 3명만이 졸음에 겨운듯 허술한 감시를 하고있었다. 제법 바람이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스리를 냈다. 탈출의 기회가 눈앞에 왔다. 우리의 사전계획에 따라 채씨는 먼저 포복으로 서쪽방향으로 돌아갔다. 만일의 경우 내가 뒤처리를 맡기로했기때문에 나는 채씨보다 약간 늦게 포복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고난의 강행군동안 우리를 몹시 귀챦게한 「안·머이」를 꼭 죽여버리고 가고 싶어졌다.

<세놈 해치우고 도강>
나는 한번더 용기를 내기로하고 「안·머이」가 자고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하나, 그놈한테는 천행이었던가, 자리에 「안·머이」란 놈은 없었다. 수캐처럼 색을 좋아하는 놈은 틀림없이 여자 「베트콩」을 쫓아간것 같았다. 나는 어쩔수없이 되돌아 기어왔다. 그때 총을갖고 감시를 하고있던 놈한테 내모습이 발각되었다. 「누구냐?』고 감시병한놈이 소리쳤다. 나는 순간, 부시시 일어나 허리춤을 쥐어잡으며 소변을 보는 시늉을 했다.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서면서 나는 재빨리 맨앞의 총을든 놈을 옆차기로 걷어찼다. 그가 몸을 가우지못해 쓰러지는 순간, 나는 또 나머지 두놈을 향해 온힘이 닿는대로 걷어차고 치곤했다. 허공에 떨어지는 총을 거머잡고 총대로 닥치는대로 후려쳤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처럼 뛰었다. 『풍덩』강에 뛰어들어 물을 저으며 도망쳤다. 얼마를 도망쳤는지 숨이 턱에 닿도륵 가빠졌다.

<"오줌 한번누고 가자">
그통에도 채씨는 헐레벌떡거리며 『야 임마, 여기서 오줌한번 누고가자』고 고집이었다. 『오줌을 누고가면 들키지 않는다』는 미신을 따르자는 딱한 고집이었다. 채씨는 부득부득 나오지않는 오줌을 승강이를 하듯 한참 끙끙대며 한주발쯤 누었으나 「베트콩」을 때려죽인 나는 몹시 불안해서 아무리 오줌을 누려해도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소변을 마친 채씨는 어둠속에서 방향감각마저 잃었는지 우리가 도망쳐 나온길로 되돌아 가려했다.
나는 『형님, 그길이 아니라』고 했으나 그는 기어이 『따라오기만 하라』고 우기기에 할수 없이 띠라가 봤다. 아니나다를까 우리는 앞서 건넜던 강가에 되돌아오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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