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바수술 이야기]⑧ 마지막 숙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두 번째 미국행에서 판막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가 마무리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아마도 여유로운 생활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들은 가끔 텍사스에서 지낼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그때만큼 많았던 적이 없었다.

당시 주 6일 근무가 당연했던 한국과 달리 미국은 주 5일 근무가 보편화돼 있어 마음은 바빠도 몸은 여유로웠다. 게다가 친구나 친척, 직장들로부터 떨어져 있어 모든 여가 시간을 오롯이 가족들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다.

배울 게 많기도 했지만 토요일에 쉬는 것을 당연시하는 미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처음 오리건 대학병원에 갔을 때, 주말에도 출근해서 환자를 보거나 연구를 하면서 보내곤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대해 미국인 동료들은 일 중독이라고 하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 반감만 들었다. 나는 당신들처럼 한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 미국에 갔을 때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이 내게 진지하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과 적절한 휴식이 일의 능률을 높여 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뭔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차피 내가 찾는 답은 교과서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의 구조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봤다. 그때 내 관심사는 어떻게 이 이론을 임상에 적용할 것인가였다. 판막과 근부의 움직임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게 된 건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을 통해 질병을 고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였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과 수술법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꼭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뒹굴고 노는 아이들 옆에서 흔들리는 베갯잇을 잡고 꿰매는 연습을 했다. 집에 엄청나게 많았던 불개미들을 수술용 인두로 지지면서 지혈하는 연습을 했다.

집에 있는 모든 도구들 - 냅킨이며 과일 껍질, 아이들의 장난감 등등 모든 것들이 연구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편, 아이들은 내가 쓰고 난 종이들을 둥글게 뭉쳐서 눈싸움을 하고 놀았다. 연구가 놀이, 놀이가 연구가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당시 내 마지막 숙제는 판막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였다. 근부를 어떻게 고정해야 할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판막을 재건한다 했을 때 그 삼차원 구조를 정형화시키는 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기초 이론이 탄탄하면 금방 수술법을 개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게 되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원을 둘러보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한참을 안방에서 놀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스르르 잠이 든 후였다. 나는 종이에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수술법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인기기사]

·단체예방접종, 건강관리업체가 기업과 짜고 싹쓸이 [2013/07/08] 
·치협에 과징금 5억원 판결…반값 임플란트 논쟁 유디치과가 웃었다 [2013/07/08] 
·항응고제 시장 3파전 ‘혼란’ [2013/07/08] 
·대학가 일대 좀비 퍼포먼스로 A형 간염 위험성 알려 [2013/07/08] 
·휴온스, 중앙연구소 이전 완료…연구인력 대거 채용 [2013/07/08]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