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라운지] 뿌리 깊은 서열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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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한다."

인사철마다 법조계에 흘러나오는 '돌림노래'다. 사법시험 동기나 후배가 자신보다 윗 자리에 오를 경우 옷을 벗는 것이 법조계의 오랜 관행이다.

지난달 말 김종빈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뒤 검사장 7명이 잇따라 사표를 냈다. 특히 이정수 대검차장, 정진규 법무연수원장을 비롯해 황선태 서울동부지검장, 채수철 서울북부지검장, 박종렬 서울서부지검장 등 검찰에 재직 중인 김 내정자의 사법연수원 동기(5기)가 모두 검찰을 떠났다.

이로써 신임 총장은 1600여 명의 검사 가운데 기수에서 가장 앞서게 됐다.

검사의 신분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탄핵.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정직.감봉의 처분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검사의 정년 63세(검찰총장은 65세)를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원의 서열주의는 검찰보다 심하다는 평이다. A판사는 법원 통신망에 "등산할 때도 어느 순간에 서열 순으로 걸어간다"며 뿌리깊은 서열의식을 비판한 바 있다. 복도를 걸어갈 때도 줄 서기는 마찬가지다. 대법관들마저도 청사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서열 순으로 탑승한다는 말이 법원 내부에서 나온다.

판사의 서열은 사법연수원 기수에 의해 정해진다. 동기일 경우 사시합격 점수와 연수원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 연수원을 수료할 때 정해진 순서는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서열은 승진.보직은 물론 해외 연수 대상자 등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서열 덕분에 '유리알 인사'라고 할 정도로 법조계는 인사 잡음이 거의 없다. 조직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능력.업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서열에 따른 용퇴 관행이 유능한 경력자들의 경험을 사장시켜 사회적으로 손실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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