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이보그 기르는 게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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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14면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2014년부터 초등학교에 디지털교과서를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은 촉박한데 교육학자들 사이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고려대 홍후조 교수(52·사진·교육학과)가 대표적이다. 홍 교수는 최근 한국교육개발원 저널에 실린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교사 수요 조사’에 제1저자로 참여했다. 보고서에서 홍 교수는 “디지털교과서로의 변화 과정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순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연구실에서 홍 교수를 만났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는 사이보그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호모사피엔스를 어떻게 기르느냐의 문제다. 어릴 때는 오감의 발달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 포크 대신 젓가락으로 밥 먹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애를 쓰겠나. 간접 경험이나 가상 경험보다 직접 경험이 훨씬 귀한 것이다. 가뜩이나 시각·청각을 혹사시키는 문화 속에서 가상 경험을 많이 시켰을 때 어떻게 되겠느냐. 거기에 대답해야 한다.”

-시대적 흐름이라는 지적도 있다.
“옛날에는 석판을 가지고 공부하고 땅바닥에 쓰기도 했다. 인쇄술이 발명됐을 때는 필사본을 쓰기도 하면서 지식이 확대됐고, 지금은 발에 차이는 것이 지식이다. 그런데 왜 종이교과서로 공부해야 되느냐, 시대에 뒤처지는 것 아니냐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IT의 장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활용 비율을 높이면 된다. 교과서 자체를 디지털교과서로 바꾸는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스마트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선 CNDP가 필요하다. 콘텐트(Content), 네트워크(Network), 디바이스(Device), 플랫폼(Platform)이다. 그런데 콘텐트를 제외한 나머지 하드웨어적인 면에 드는 예산이 어마어마하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교과서 보급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스마트 교육을 추진하고 있는데.
“싱가포르가 스마트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는 수준이지, 어릴 때부터 디지털교과서로 가르치는 문명국가는 거의 없다. 유대인들이 왜 자식들에게 잘 나오는 색연필 대신 불편한 크레용을 쥐여주겠는가. 감각을 고루 발달시키기 위해서다. 디지털교과서는 시각과 청각만을 혹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 중요한 시장이라는 시각도 있다.
“맞는 말이다. 전국 학생 수가 700만 명이 넘는다. 디지털교과서는 교육산업, 콘텐트산업, IT인프라산업을 활성화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결정이 교육계보다는 산업계의 입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교사 수요’를 조사한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교육 추진전략’은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국 초·중·고 교원의 5%인 2만68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어땠나.
교원들은 특성화 및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우선적으로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해야 하고, 주 교재보다는 보완 교재에 대해 개발과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디지털교과서의 효과 면에서 흥미·관심도 향상, 이해도 증진에는 효과적일 것으로 봤으나 글쓰기 능력,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 협동학습 능력 증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디지털교과서는 모든 학교, 모든 교과목의 영역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져선 안 되고, 충분한 의견수렴 후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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