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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책읽기] 석학 148명에게 묻다,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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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과 지식’에서 해외 신간을 살피는 ‘글로벌 책읽기’를 시작합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각국 출판계의 화제작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폭넓고 역동적인 세계 지식사회의 흐름을 먼저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This Explains Everything
John Brockman 엮음
Harper perennial 출간
12.14 달러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신의 섭리, 자연의 원리 등이 있겠지만 실은 셋 이상의 입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정식조차 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티븐 호킹에 따르면 실재(reality)란 외부세계의 모형을 뇌라는 감각기관이 받아 만든 개념일 뿐이다. 아르헨티나 천재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자연법칙을 모르는 인간이 자신들이 고안한 현실을 실재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1981년 과학자·사상가 모임인 ‘리얼리티 클럽(The Reality Club)’을 만든 존 브록만(73·엣지재단 창립자)이 세계 석학 148명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론으로 답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인간·마음·시간·사회·우주 등에 관한 빛나는 이론을 받아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은 지성의 성찬이다. 『총,균,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긍정적 스트레스 이론을 편 나심 탈렙, 인간 갈등의 유전자적 뿌리를 논한 스티븐 핑커 등이 참여했다. 주제별 짜임새가 촘촘한 편은 아니지만 진화생물학·유전학·컴퓨터공학·신경생리학·우주론·물리학·과학철학·네트워크 과학·심리학·정신의학 등 현대과학 전반의 통찰과 직관을 한데 모았다. 짧게는 한 문장, 길게는 네 쪽, 대부분 짧은 글로 학문적 연찬에서 시(詩)까지 등장하는 창의적 터치다. 그 중에서 뇌와 판단에 관한 에세이 몇 개를 추려보자.

 이론이나 직관은 이해와 설명을 돕고 문제 풀이의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지식 자체가 복잡하면 길을 헤매기 일쑤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랑크 웰제크는 진정함은 단순함(simplicity)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간단한 설명이 복잡한 것보다 자연스럽고, 간결하고, 믿음직스럽다는 것이다. 이론물리학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실험과 관찰자료를 설명력 강한 법칙으로 단순화시키는 경험이 근거가 된다.

 의학도 출신의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아름다움이 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진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특화된 모듈들로, 각기 다른 환경과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정보를 모은다. 이들은 때로 상충되는 명령을 발하기도 한다. 존재는 필요 이상으로 수를 늘려서는 안 되고 쓸데 없이 많은 전제를 내세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을 활용해야 할 이유다.

 모듈 이론은 집단 갈등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을 때 갈등관계에 있는 두 집안을 두 개의 다른 정신 모듈, 이른바 집단성 모듈과 개인관계성 모듈로 푼다. 앞의 모듈은 범주의 선을 그어 카테고리 안에서 평균치를 계산해 내고, 뒤의 모듈은 스캔들 같은 특별한 개인의 정보를 저장한다. 조립된 모듈 마음 이론(theory of modular mind)이 시처럼 아름답거나 우아하진 않아도 진리가 아름다움을 앞서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뇌가 중복해서 세상을 인지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뇌가 상충되는 부위로 구성돼 서로 경쟁해 각자가 모두 내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민주주의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뇌는 그래서 둘 또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진다. 보통 때와 달리 놀랄 때는 독립된 제 2의 트랙을 따라 편도(amygdala)에 저장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기억이 예고 없이 섬광처럼 떠오른다.

 교통사고·강도·강간·실연·전쟁 같은 아픈 경험이 그렇다. 같은 일이 달리 기억되기도 하여 기억의 정확성이나 일관성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제 뇌과학에서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가장 영리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문제해결에 중복되는 여러 방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새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된다. 이것이 신경민주모델(neural-democracy model)로서 리더들이 실천해야 숙제다.

 뇌가 기억도 저장도 계산도 환경적응도 제대로 못하니까 사람들이 제한적 합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마자린 배나지의 생각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1978)과 다니엘 카너먼(2002)의 생각과 일치한다.

 책에는 시간·공간·인간·우주 등 형이상학에 가까운 상상을 초월하는 글이 듬뿍 담겨있다. ‘지식기획자’ 브록만이 이뤄낸 성과다. 우리 시대 석학들의 통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찬이 시작됐듯이(『한 평생 지식』) 이 나라 지식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리기 위해서라도, 개별 분야를 떠나 융합적 사고에 목마른 이들이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현 출판문화진흥원) 산하 ‘좋은 책 선정위원회’ 위원장 역임. 저서 『서울대 리더십 강의』(2011),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2010), 『통의동 일기』(2009) 등. 편저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20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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