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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24시간|법관|사건담당 년 4만천3백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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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민사지법의 C부장판사가 갑자기 사표를 냈다. 지난4월30일의 일이었다. 17년동안 지켜온 판사직을 사직서 한장으로 끝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일신장의사정』때문이라했다. 그러나 C반사의 그 결심뒤에는 심각한 경제적고충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지나칠수없었다. 집한채없이 성장한 아이들의 교육비걱정등이 겹쳐 변호사개업으로 돌파구를 찾아나선것이다.

<집없는 l7년판사>
같은날 서울지검의H검사는 밤늦도록 자기사무실에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표정은 노여운것과 고통스런것이 한데 얽힌 표본같았다. 나중에야 밝혀진 일이지만 H검사는 그날 1년동안 갈이 일했던 입희서기의 구속여부를 두고 고민 했던것. 검사를 사칭하고 엉뚱한 일에 개입하여 말썽을 일으킨 그사람보다 그 죄를 처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백60건 선고해야>
서울형사지법의 G판사는 올해 만6년반째 판사생활을 했다. 고시에 합격한 후 군법무관 생활을 합치면 만10년째. 판사5호봉 봉급으로 일곱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그가 받은 4월분 봉급은 연구수당 1만원을 보태 모두 4만5천1백원. 소득세 5천7백원, 연금 기여금 1천1백20원, 법조회비 1백원, 보험료 8백10원. 공식적인 경조금 1천3백53원, 신문대금 1백원, 밀린 연금기여금 l천2백74원이 공제된채 실수령액은 3만4천6백1원.
G판사는 이 봉급으로 그대로 최저생활은 유지할수 있지만 해마다 늘어가는 업무량때문에 판사생활을 더 이겨낼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69년1월1일자로 배당된 사건이 G판사의 경우 모두 1천7건. 구속사건2백24건·부구속사건 2백41건·약식사건 5백42건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미제사건 6백여건으로 줄어들었지만 요즘도 하루평균7∼8건이 배당되고있다.
공판사건만도 한달에 l백60건을 선고해야 간신히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한달에 영상담당숙직 1회. 평균1백50건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나면 그때마다 들어오는 주부심사신청건수는 평균20건.

<천장넘는 기록도>
형사단독판사의 경우 1주일에 2회 공판을 연다. 그중 하루는 속행, 하루는 의고공판이 보통이다.
어떤 사건이든 심리개시전에 충분히 기록을 보기는 힘들고 겨우 하루전에 공솟장을 읽는 정도다. 1주일에 40건의 선고를하자면 판결문도 그만큼 마련해야한다.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도 50「페이지」는 넘는 기록을 들취봐야하고 어떤때는 1천「페이지」가 넘는 기록을 갖고 씨름을 해야한다. 판결문작성에 만2일은 걸린다. 따라서 1주일동안 하루는 속행공판, 하루는 기록검토, 2일은 판결문작성, 하루는 선고공판을 하고나면 시간적인 여유라곤1주일에 하루정도라고.
거기에다 구속기간, 구류만기일이 정해져 있는 만큼 일이 밀리면 기록보따리를 집으로 가져가기 일쑤고, 낮에도 각종청탁, 변호사방문등을 피해 도서실로 가는 것이 예삿일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법관들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고있다. 전국 3백80여명의 법관 1인당 연간사건부담건수는 4만1천3백26건으로 일본의 5백여건, 미국의 2백60건에 비해 82∼1백60배의 일을 하고있다.
서울형사지법 최광률판사는「내 손으로 인간의 본능적 수단인 생명과 재산을 다룬다는 긍지와 사명감 때문에』그래도 적은 봉급과 많은 업무량을 견디어 낼수 있다고 했다.

<누명벗겨줄땐 통쾌>
그중에서도 형사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것이 확정되었을 때처럼 보람을 느끼는 일이 없다는게 판사들의 공통된 심경이었다.
그러나 판사들의 고통도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S판사는『황금만능의 사고방식으로 모든것을 평가하고 그렇게 대할때가 제일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부 판사들에대한 잡음이 전혀 없는것으로 장담 못한다는게 A판사의 말이다.

<잡음에는 서로감싸>
그러나 독특한 판·검사의 선발시험때문에 동료들은 서로 감싸주는 경향이 그 어느 직업인보다 짙은 것은 숨길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의 모든 것이 고시에 합격하는 순간부터 해결된것으로 생각했던 만큼 실망도 큰 직업이 법관직』이라고 S판사는 서슴지 않고 말했다.
『싫어도 싫다못하고 내심과는 반대로 남들이 비방하면 철저히 변호하는 것도 선망의 직업이 형극의 직업인줄 깨닫게되는 순간부터』라고.
서울지검K·P두검사는『온갖 모함과 보이지 않는 손길의 압력에 굽히지 않는 신념없이는 못할 직업』이라고 입을모았다. 『하지만 내 아들에게까지 판·검사생활을 시키고 싶진 않다』는게 그들의 일치된 표현이었다.
정보입수·내사·입건·수사·구속·기소등에 이른기까지 갖가지 모함과투서, 성과에 대한 동료들의 질서가 가장 두려운 곳이 검사직이라고 K검사는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검사엔 모함따르고>
서울형사지법 함의 부B부장판사는『기룩과 육법전서만으로 재판할수없는, 인간의 재판을 생각할때 제일 두렵다』고했다. 사회관·가치관등으로 닦여진 자기나름의 재판관이 정립되지 않은채 재판을 할수없는 일임을 후배들에게 충고하고싶다고 했다.
『아직도 우리나라 법조계는 선진국과는 달리 선배인 검사가 소추하면 후배인 판사가 심판하고, 대선배인 변호사가 변논을 하고있는 이상상태』라는게 R변호사의 말이고 보면 생활인으로서의 판·검사야말로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인 긍지로 안주할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은 그릇됨이 없겠다.

<백학준기자>
차례
ⓛ국회의원
②군인
③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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