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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석 거대 여당 새누리 황우여·최경환 삐걱대고 중간보스 난립해 모래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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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일 오후 1시30분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린 국회 본관 246호 회의실.

국회 본회의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자료 제출 요구안’ 표결을 앞두고 원내지도부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열린 의총이었지만 제시간에 모인 의원들은 30여 명에 불과했다. 원내지도부는 의원들을 기다리다 못해 1시40분쯤 의총을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모인 의원들은 50명에도 못 미쳤다. 긴급한 상황에서 열린 의총이었으나 100명 이상의 여당 의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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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11시40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황우여 대표는 현안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황 대표의 회견엔 ‘긴급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황 대표는 여야가 NLL(북방한계선) 수호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곤 민생살리기에 전념하자는 원론적 얘기를 했다.

 황 대표의 회견 내용을 전해들은 최경환 원내대표실의 한 당직자는 “지금 민주당에 맞불을 놔도 시원찮은데, 저렇게 수세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요즘 덩칫값을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국회 과반인 154석을 확보한 집권당이지만 최근 국정원 댓글 사건과 NLL 대화록 정국에서 응집력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우선 당의 투 톱인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간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 시절엔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역할 분담이 비교적 잘 이뤄졌다는 평가다. 지난 3월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때 원내대표들끼리 대화가 막히면 황 대표가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막후 채널을 가동해 상황을 진전시키곤 했던 게 한 예다.

 하지만 박근혜계 핵심 중의 핵심인 최 원내대표가 지도부에 진입하면서 당의 무게중심이 급속히 최 원내대표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그만큼 황 대표의 입지가 좁아졌다.

황우여 측 “중요 현안 사전정보 못 받아”

황 대표의 한 측근은 “현안과 관련해 원내대표실이 대표실과 아무런 상의가 없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全文) 공개로 촉발된 이번 ‘국정원 정국’에서 황 대표는 고비 때마다 아무런 사전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황 대표와 최 원내대표의 성향 차이도 불협화음이 나오는 원인 중 하나다. 황 대표는 가급적 야당의 의견을 들어주고 타협해서 풀어나가려는 스타일이다. 최근 사석에선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것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최 원내대표는 사안에 따라 정면 대결과 강공도 불사하는 쪽이다. 특히 이번 ‘국정원 정국’은 민주당 일각에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까지 제기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밀리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당의 투톱 간에 이번 국면을 대하는 인식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손발이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는 측면도 있다.

 근본적으론 당에서 절대적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빠져나간 뒤 중간 보스급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 당의 응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다.

 새누리당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차기 주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1인 보스’ 체제가 몸에 밴 정당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이회창 전 총재-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계보를 이어왔다. 그런데 지금은 당에 그런 중심축이 없다. 아직 집권 초반이라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확고한 편이지만 그래도 의원들은 속성상 ‘차기’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세를 형성할 만한 인사들로는 김무성·정몽준·이재오 의원과 당 밖에선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꼽히지만 다들 엇비슷한 수준이어서 새누리당의 새 권력 질서가 가닥이 잡히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구심점이 없다 보니 이번 국정원 정국에서도 최 원내대표 주변 인사들만 분주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손 놓고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문재인 캠프의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해 국회 안팎에서 연일 화력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새누리당에선 최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원내대변인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관전하는 수준이다. 협력 플레이는 고사하고 있는 전력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핵심부의 전략 조율 기능이 ‘부재’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핵심 당직자는 “NLL 대화록 전문 공개는 최경환 원내대표도 국정원의 방침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데 여당이 국정원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5년 전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최측근인 이상득·이재오 의원을 통해 사실상 당을 직할 통치했다. 지금 박근혜계엔 최경환 원내대표가 있다지만 과거 이상득·이재오 의원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운 구조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당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서 의원들 사이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어진 점도 당의 집단대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 안에서도 이른바 ‘개혁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소속 의원들과 보수파 의원들과의 인식 차이는 상당히 크다. 최근 논란을 빚었던 김무성 의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전 입수 발언’도 경실모의 대표인 남경필 의원과 언쟁을 벌이다 나왔다.

 지난달 2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회의 때 남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문제를 삼자, 화가 난 김 의원이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내가 작년에 봤는데…”라는 말을 꺼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 회의록 공개 싸고도 계파 갈등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때 드러난 박근혜계 핵심그룹에 대한 나머지 그룹의 견제 분위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당의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원내지도부는 대화록만 공개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판명 날 걸로 본 모양인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왜 NLL 포기인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홍보 전략이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손병권 한국정당학회장은 “새누리당이 제 역할을 하려면 독자적 어젠다 세팅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워낙 오랫동안 1인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당의 체질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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