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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시아파 종교 살육전 … 1400년 거꾸로 돌아간 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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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동안 잠잠했던 이슬람 시아·수니 간 종파 분쟁이 시리아 내전 확대에 편승해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바그다드에선 차량 연쇄 폭발로 8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날은 시아파 12대 이맘인 메흐디의 탄생 기념일 샤바니야였다. 다수 시아파가 주도하는 누리 알말리키 총리 정부에 불만을 품은 소수 수니파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이후에도 양대 종파 간의 충돌로 여겨지는 크고 작은 테러가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최근 두 달 사이에만 2000명이 넘게 숨졌다. 이라크 수니파 무장게릴라들은 지하드(성전)를 외치며 국경을 넘어 시리아 수니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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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뿐이 아니다. 그동안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던 이집트에서도 시아·수니 간 종파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이집트에서 절대다수인 수니파 주민 수백 명이 극소수 시아파를 집단 폭행해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레바논에서는 시아분파인 알라위트파 출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수니파가 갈라져 수도 베이루트와 트리폴리 등 곳곳에서 연일 유혈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시아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레바논 정부군은 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수도 베이루트 남부 시돈에서 강경 수니파 성직자 셰이크 아흐마드 알아시르를 추종하는 무장 세력과 충돌해 최소 19명 사망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헤즈볼라는 최근 시리아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알아사드 정부군이 전략 요충지인 알쿠사이르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니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레바논인들을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같은 수니국인 터키·카타르·쿠웨이트와 함께 시리아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반군의 핵심인 자유시리아군에는 수니 알카에다 연계조직으로 알려진 ‘누스라 전선’도 가담하고 있다.

 이슬람 중동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오랜 대결구도가 약해지고 있는 반면, 무슬림 내 수니·시아 종파 분쟁은 날로 격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2003년 이라크전이 기폭제였다면 시리아 내전은 중동의 양대 종파를 모두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런 중동의 모습은 이슬람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가 죽은 뒤 분열됐던 두 종파가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벌였던 7세기를 방불케 한다. 632년 마호메트 사후 그의 교우였던 아부 바크르·우마르·우스만과 알리 4명의 정통 칼리프들이 차례로 권력을 승계했다.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칼리프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다. 칼리프 알리는 반대파에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후세인은 사우디 메디나를 떠나 이동하던 중 이라크 카르발라 전투에서 숨졌다. 이 사건은 이후 무슬림 공동체의 영구적 균열을 초래했다. 이슬람 전체로 보면 다수파인 수니는 4명의 칼리프 모두를 인정한다. 수니파는 알리 사후 중동에서 줄곧 절대권력을 유지해 왔다.

 양측의 강경파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은 생존이 걸린 전쟁이라며 종파 분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아랍권 수니파 성직자들은 지난달 13일 카이로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를 ‘종파주의적’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이란 정권, 헤즈볼라, 그리고 이들의 편을 드는 시리아의 종파주의자들의 뻔뻔스러운 침략 행위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선전포고에 해당한다”고 비판하며 수니 반군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표시했다. 사우디의 최고위 성직자 압둘 아지즈 알샤이크는 “가증스러운 종파주의 집단을 응징하라”고 말했다.

 종파 간 대결의식이 고조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시아 무장세력에 아들 둘을 잃은 이라크인 압둘 사타르 압둘 자바르(56)는 수니파 성직자다. 그는 이라크의 갈등에 대한 책임이 미국과 이란에 있다고 비난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자바르는 또 “정부는 우리를 이라크 국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며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는 알말리키 정부도 비판했다. 바그다드에서 시아파를 다수 고용하고 있는 수니파 건설회사 사장 아흐메드 살레 아흐메드(40)는 시아파 여성과 결혼해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수니파로 키운다. 그는 “가급적 아이들 앞에서는 종파 문제를 토론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아파 레바논 여성 은행가 라니아(51)는 수니파 남편과 결혼했다. 그는 “결혼 당시에는 수니와 시아의 차이를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라니아 부부는 시리아 내전의 서로 다른 정파를 지지하지만 논쟁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의 수니파 블로거 아흐메드 메슬레(28)는 “유대인이나 이스라엘보다 시아파가 무슬림과 이슬람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 샤티 캠프의 난민 이스마일 알하마미(67)는 “종교가 아닌 정치가 종파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수니파이면서도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가자지구의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는 최근 시아 헤즈볼라의 시리아 철군을 촉구해 균열을 보이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최대 이슬람 신자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종파 간 대립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미국 국무부 ‘2012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동부 자바주에서 다수 수니파가 시아파를 공격하고 개종을 강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시아·수니는 기도할 때 손을 모으는 방법 등 예배의식과 교리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상대방 종파의 주요 인물을 본떠 이름을 짓지도 않는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올 초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수니파 셰이크 알아자르는 “시아파가 우리와 함께 잘 지내려면 모하메트의 후계 칼리프들을 모욕하는 것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시아파는 알리 이외에 다른 정통 칼리프의 합법성을 부정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크게 보면 공통점이 훨씬 많다. 이라크전 이전만 해도 중동에서는 수니·시아 간 결혼이 흔할 정도로 종파 분쟁은 드물었다. “옳고 그른 것은 오직 알라신만이 안다”며 이슬람의 대동단합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이라크전과 시리아 내전 여파로 마호메트 사후 최고조에 달한 수니·시아 간 분열을 치유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경환 선임기자

수니파와 시아파

◆수니(Sunni)파=이슬람의 가장 큰 종파이자 전 세계 무슬림 10억 인구의 90%를 차지해 ‘정통’을 자처한다. 신의 말씀인 코란과 함께 예언자 마호메트의 언행과 관행을 의미하는 수나(Sunnah)를 따른다. 공동체의 관습을 허용하는 등 세속적으로 교세를 확장한 까닭에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등 새롭게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국가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시아(Shi’ite)파=무슬림 전체의 10%를 차지하며 주로 이란·이라크에 분포한다. 예언자 마호메트의 적통 계승이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제4대 칼리프)에게 있다고 보고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들만 이맘(종교지도자)으로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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