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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의 근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외신은 야인이 된 「드골」 전대통령의 근황을 알려주는 시적풍경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향리 「콜룽베·레·되제글리즈」촌의 「라·브와세리」공원을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정답기만 하다. 「드골」은 「선·글래스」를 쓰고 가볍게 단장을 든채 「마로니에」숲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다.
그가 지금 은거생활을 하고 있는 「콜롱베·레·되제글리즈」는 의외로 세상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파리」에서 불과 40㎞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러나 몹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랑그루」고원을 뒤에 두고, 석회암이 밝고 눈부시게 빛나는 평화로운 전원. 때때로 철공장의 망치소리가 그 정적을 깰 뿐이다. 「가스통·본헤르」저 『드골전』을 보면 이마을은원래 「카톨릭」의 소구도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콜롱베·레·되제글리즈」라는 촌명은 바로 그 「2개의 교회」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지금도 이곳의 촌장은 68세인가 된 농부이다. 그리고는 몇몇 청년들과 수도원장이 이 마을을 움직인다. 공지사항이 있으면 그 청년들은 공원으로 달려가 나팔을 분다. 촌민들은 이소리를 듣고 모인다.
드골은 「콜룽베」촌에 1.5헥타르(1㏊=1천평방m의 땅을 갖고 있다. 여기에 그는 24년전에 탑모양의 집을 지었다. 그의 거실엔 3개의 창을 터 놓았다. 그는 이창을 내면서 『시계 1백80도엔 집도 주민도 없다. 경하할만한 일이다!』라고 찬탄한 적이 있었다. 가구라고는 책상과 박달나무로 만든 안락의자, 그리고 「자유프랑스」시절에 간호원들이 선물한 양탄자뿐이다.
이촌에서 「드골」의 신분은 좀 기묘하다. 한마디로 그는 한시민의 신분에 있다. 군인의 자격으로 보면 그는 어떤 규약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퇴역군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장군명부에 있지도 않다. 그는 1946년 임시육군대장에 임명된 후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전대통령의 예우」를 성격상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권위와 훈장은 평소에도 몹시 싫어했다. 그가 「콜룽베」로 훌훌떠난 것도 바로 자신의 인격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일요일이면 정오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요즘의 유일한 일과. 교회 한가운데 이들 노부부가 앉으면 주위는 우뚝한 몸집에 압도된다.
우리는 「프랑스」정치의 한 목가적 풍경을 보는 기분이다. 정치가가 만년을 이처럼 평화롭게, 그리고 시적으로 보내기는 정말 힘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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