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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애들이 무슨 죄, 다 키즈산업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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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원제 Born To Buy:Market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ldhood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해냄, 305쪽, 1만5000원

장난감이나 옷, 과자 등을 사달라는 자녀에게 시달리다 보면 짜증날 때가 많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해로울 수도 있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땐 돈 문제에 앞서 화부터 날 때도 있다. 또 살만 찌게 하는 패스트푸드를 만들어내는 식품회사들도 눈에 거슬린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TV 광고를 원망하고,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물건 욕심이 많고 참을성이 없는지 탓하게 된다.

미 보스턴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저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애들이 유난히 욕심 많은 게 아니라, 탐욕스런 기업들이 애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보는 점이 다르다.

"어느 토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밤새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밖은 너무 적막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대신 모두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 뛰어놀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이들이 TV, 비디오 게임, 컴퓨터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면서 밖에 나와 노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때부터 아이들의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저술 동기를 밝혔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마케팅 관련 서적같다. 그러나 내용은 기업들이 아이들로부터 돈을 끄집어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태와 이로 인해 황폐해지는 아이들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기업은 아이들에게 상품을 팔지 않는다. 대신 상품의 이미지를 판매한다. 이 상품이 없으면 또래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없다고 광고한다. 이른바 '쿨(cool)'하다는 이미지를 성공의 열쇠로 정의하고 이를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수수하게 사는 것은 패배자의 삶이라고 낙인찍는다. 동시에 반(反)기성세대 정서를 부추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고, 부모에게 저항하고 싶은 십대들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마지막 수단으로는 부모에게 무조건 사달라고 매달리는 '조르기' 수법을 쓰도록 아이들을 부추긴다. 놀랍게도 아이가 조르면 불필요한 상품이라도 어쩔 수 없이 사주는 부모가 70%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들이 쏟아붓는 정성도 엄청나다. 게임업체 하스브로는 학교나 동네에서 가장 '쿨'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알파 키드(Alpha Kid)'를 찾아내 이들을 마케팅 비밀요원으로 활용했다.

아이들의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하는 마케팅 회사도 적지 않다. 학교도 이들의 주된 무대로 이용된다. 1989년 채널 원은 1만2000여 학교와, 비디오 장비와 모니터를 제공하는 대신 매일 일정한 시간 학생들의 시청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었다. 물론 채널 원은 이중 일정 시간을 광고로 팔아먹었다. 참고서에 상품 광고가 실릴 뿐 아니라 교과 내용에 상품 브랜드가 끼어들기도 한다. 수학 문제에 브랜드 명을 등장시키는 식이다.

기업의 속성이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상업화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하다. 요즘 9~17세 보통 아이들의 불안증 척도가 57년 당시 병원에서 심리 장애로 치료받은 아이들과 비슷할 정도다. 비만이 유행처럼 퍼지고 주의력 결핍 장애, 과잉행동 장애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저자는 과소비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우울증, 불안증, 자부심 저하, 심신증(심리적 문제가 신체 질환으로 나타나는 증세) 등에 더 시달린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대책은 간단하지만 실천하긴 쉽지 않다. 아이들을 광고 등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TV를 끄고 부모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어린이용 광고에 세금을 매기고, 부적절한 광고를 규제하는 등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내용은 미국의 일일 뿐, 우리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외면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저자의 의도와 반대로 국내 기업들이 이 책에 열거된 키즈 마케팅 사례를 배우겠다고 덤빌까 겁난다.

이세정 기자

◆ 책꽂이

"식품업체들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먹는 것을 갖고 놀 수 있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환상적인 포장은 물론 식품들에 각종 콘테스트와 장난감, 여타 선물들이 곁들여지고 있다…이런 '장난감화 현상'이 계속되면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에 이로운 식품을 중요시하지 않게 될 것이다."(94쪽)

"부모들이 바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광고는 다각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부모들의 처지는 '골리앗(기업)에 맞서는 다윗'과 다를 바 없다…그러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일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어린이들의 행복을 보호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데 주력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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