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 "국민 요구 충족 안되면 개입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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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대통령궁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무르시 취임 1주년인 이날 이집트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카이로 AP=뉴시스]

이집트 전역에 2년4개월 만에 다시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타올랐다. 2011년 2월 혁명의 성지인 카이로 타흐리르(순교) 광장은 또다시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 군중으로 뒤덮였다. 시위대 규모도 당시와 비슷하다. 타도 대상은 30년 철권 통치를 펼친 호스니 무바라크에서 이 나라 최초의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로 바뀌었다. 무르시 정권은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무르시 대통령 취임 1주년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흐리르광장엔 약 50만 명(AFP통신 추산)의 반정부 시위자가 모였다.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거리에서 “무르시, 에르할(떠나라)”을 외쳤다.

 시위를 주도한 야권과 시민단체 연합 조직인 ‘타마로드(반란)’는 무르시 대통령에게 2일 오후 5시까지 하야를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그 뒤에는 대대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화나 타협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집트 국영TV는 “관광부·환경부·정보통신부 등 이집트 장관 5명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반정부 시위대에 동조하는 뜻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새벽 카이로 동부 지역의 ‘무슬림 형제단’ 본부는 시위대에 점거됐다. 6층 건물의 일부가 불에 타고 집기들이 파손됐다. 그 과정에서 무슬림 형제단 회원 등 8명이 숨졌다고 이집트 관리가 BBC방송에 밝혔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시위에서 이날까지 20명 안팎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무르시 정권의 기반인 무슬림 형제단 측과 시위대의 싸움에서 빚어진 희생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최대의 정치·종교 조직으로 이슬람 정신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은 한편에서 연일 친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무르시 대통령은 시위대가 대통령궁 주변으로 몰려오자 카이로 시내의 안가로 잠시 피신했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퇴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51.7%를 득표해 당선했다. 2011년 혁명 주도 세력의 후보들이 난립해 1차 투표에서 모두 낙마하는 바람에 무슬림 형제단이 내세운 무르시와 군부 출신의 아흐메드 샤피크가 대결을 벌였다. 무르시 대통령은 집권 뒤 무슬림 형제단 회원들로 정부 요직을 채우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추진했다. 시위가 격해지자 이집트 군부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군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가 안보가 중대한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며 “정치 세력은 48시간 이내로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라”고 경고했다. 군부가 반정부 시위 이후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처음이다. 군부는 또 “국민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군이 개입할 것”이라고도 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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