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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오뉴월 더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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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찍 시작된 더위에 전력난까지 겹쳐 “오뉴월 더위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어찌나 더운지 단단한 염소 뿔이 물렁물렁해져 빠질 정도라는 것이다. “오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도 낫다”는 말도 있다. 오뉴월 땡볕에는 솔개가 지나면서 만드는 조그만 그늘도 매우 소중하다는 것이다.

 이들 속담에 나오는 ‘오뉴월’은 음력 5월과 6월이란 뜻으로, 여름 한철을 가리킨다. 양력으로 치면 6월 중순~8월 중순쯤 된다. 이처럼 5월과 6월을 합쳐 부를 때 일이월(일월과 이월), 삼사월(삼월과 사월), 칠팔월(칠월과 팔월) 등과는 달리 ‘오뉴월’로 쓰는 이유는 뭘까?

 ‘오륙월’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처럼 ‘오뉴월’로 표현하는 게 바르다. 한자어는 본음으로도, 속음으로도 발음하기 때문이다. 속음은 본음과는 달리 일반 사회에서 널리 쓰는 음을 이른다. ‘六月’을 ‘육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로 읽는 게 대표적이다. 받침이 없는 게 발음하기도 쉽고 듣기에도 부드럽다. 어떤 소리를 더하거나 바꿔 발음하기 편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되게 하는 활음조 현상이다. ‘十月(십월)’을 시월로, ‘五六月(오륙월)’을 오뉴월로, ‘九十月(구십월)’을 구시월로, ‘初八日(초팔일:음력 4월 8일)’을 초파일로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글 맞춤법은 ‘유월, 시월, 오뉴월, 구시월, 초파일’ 등과 같이 한자어에서 속음으로 읽히는 것은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은 소리를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오륙십(五六十), 십일(十日), 팔일(八日)’ 등은 모두 본음 그대로 읽지만 ‘육월, 십월, 오륙월, 구십월, 초팔일(음력 4월 8일)’ 등과 같이 쓰는 건 맞춤법에 어긋난다.

 이 밖에 ‘승낙(承諾)/수락(受諾)·쾌락(快諾)·허락(許諾)’ ‘분노(忿怒)·격노(激怒)·진노(瞋怒)/대로(大怒)·희로애락(喜怒哀樂)’ ‘토론(討論)/의논(議論)’처럼 같은 한자어이지만 본음으로도 읽히고 속음으로도 읽히는 것이 많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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