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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王 된 하마드, 국정개혁 영속성 꾀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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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10면

▲카타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의 부자나라다. 석유·가스 생산에다 제조업과 첨단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온 덕택이다. 인구 190만 명의 카타르는 2006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데 이어 2022년 월드컵을 유치했다. 사진은 카타르 수도 도하의 현대건설 하마드 메디컬 시티 건설 현장에서 보이는 마천루. ▶조선시대 태종을 연상케 하는 카타르의 개혁 군주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61·왼쪽)는 25일 왕위를 왕세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33)에게 물려줬다. [중앙포토]

18년 통치를 마감하는 데는 단 7분의 연설로 충분했다. 중동 산유국 카타르의 군주(에미르)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61)가 지난 25일 국영TV 연설을 통해 ‘왕세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33)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위한다’고 발표했다. 타밈은 즉시 왕위에 올랐다. 하마드의 양위에 중동은 물론 전 세계가 술렁거린다. 하마드는 왕세자 시절인 1995년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스위스에서 요양 중이던 부왕(父王) 할리파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야심가였다. 게다가 18년 동안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가난한 카타르를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강소 부국’으로 바꿔놨다. 거기에다 중동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해 경기장과 신도시를 신·개축해야 하는 등 굵직한 국책사업이 산적해 있다. 개혁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해야 할 상황임에도 하마드는 과감하게 왕위를 넘겨줬다. 카타르는 한국과 천연가스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해 우리에겐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카타르 국왕, 이례적 생전 왕위 이양 왜?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하마드는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줄 때가 됐다”고만 했을 뿐 양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AP통신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추정했다. 하지만 용의주도한 하마드가 국정개혁과 부국강병이 후대에도 영속성 있게 추진되도록 일부러 상왕(上王) 자리를 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TV 연설에서 굳이 “타밈 왕세자가 군주로서 책임을 질 자격을 갖췄으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확신한다”고 말한 게 그런 근거의 하나다. 군주제인 이 나라에서 후임자의 자격이나 신뢰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의외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국가적 과업과 상왕의 뜻에 충실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조선 개국 초기에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이다. 태종은 사실상 왕자의 난(쿠데타)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며 아들인 세종에게 양위했다. 그 뒤로도 세종의 후견인으로서 왕권 강화의 걸림돌들을 제거해 훗날 세종이 큰 정치를 할 바탕을 마련해 줬다.

타밈 새 국왕, 도하 아시안 게임 이끌어
하마드는 세 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11남13녀, 총 24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래선지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남다른 용의주도함을 드러냈다. 제1 부인인 셰이카 마리암 빈트 무하마드 알사니는 자신의 조카다. 둘 사이에 2남6녀를 뒀다. 제2 부인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나드(54)는 카타르 호족의 딸이다. 5남2녀를 낳았다. 제3 부인인 셰이카 누라 빈트 할리드 알사니는 왕족인 내무장관의 딸로 4남5녀를 낳았다. 부인과 아들이 많을수록 후계구도 암투 가능성이 커지고 후계자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하마드는 아들 중 세 명에게 차례차례 왕세자 자리를 맡겨 능력을 시험했다. 가장 먼저 왕세자가 된 이는 장남인 셰이크 미샬 빈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41)였다. 제1 부인 마리암의 장남이다. 23세 때인 95년 왕세자에 책봉돼 외교부에서 일했으나 1년 뒤인 96년 10월 이복동생인 야심 빈 하마드에게 왕세자 자리를 넘겨야 했다. 지금은 스포츠 분야에서 일하며 아랍승마협회장을 맡고 있다.

 96년 미샬의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된 인물이 하마드의 차남이자 제2 부인 모자의 첫째 아들인 셰이흐 야심 빈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다. 부친이 졸업했던 영국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를 96년 졸업하고 카타르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해 이복 형의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됐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제2 부인 모자가 힘을 썼다는 관측이 상당했다. 야심은 부왕으로부터 상당한 권력을 이양받아 사실상 대리인 역할을 했다. 부왕만큼 야심가였으며 보건의료, 국민화합, 환경 및 자원, 스포츠 분야를 총괄했다. 하지만 지나친 야심이 부왕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7년 만인 2003년 왕세자 자리를 잃었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이 이번에 즉위한 타밈이다. 하마드의 4남이자 제2 부인 모자의 둘째 아들이다. 모자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다. 걸프 지역 왕비로는 보기 드물게 대외활동이 활발하며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서도 활약해 왔다. 하마드는 모자에게 카타르재단 이사장을 맡기는가 하면 국빈 방문 행사나 해외 순방 때 반드시 동행해 왔다. 모자의 두 아들이 왕세자를 맡다가 둘째 아들이 결국 왕위까지 물려받은 것이다. 내밀한 궁정 정치의 일단을 짐작하게 한다.

 타밈은 98년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를 마치고 카타르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3년 왕세자에 오른 뒤 안보·경제 분야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다양한 국책 스포츠 사업을 주도했다. 특히 2009년 카타르군 부사령관에 올라 2011년 무아마르 카타피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시민혁명을 이룬 리비아 반군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중동 전역에서 카타르의 국가 위상을 높였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반군에 돈과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발상이 대담하며 안목이 국제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발군의 리더십을 보였다.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당시 조직위원회를 주도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창설 이후 전체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첫 대회가 된 것은 그의 뛰어난 리더십 덕택으로 평가받았다. 중동 국가로선 처음으로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것도 업적으로 통한다. 중동에선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다.

 타밈은 카타르투자청 이사회 의장 신분으로 나라의 돈줄을 쥐고 오일달러의 해외 투자를 주도해 왔다. 영국의 상징이라는 런던의 해러즈 백화점을 사들이고 금융업체 바클레이즈 은행, 유통업체 샌즈베리의 지분도 다량 확보했다. 지난해 영국에 건설된 유럽 최고 빌딩 샤드의 지분도 보유하는 등 서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에 앞장서 왔다.

하마드, 태종 이방원 될까 리어왕 될까
AFP통신에 따르면 그는 젊은 나이지만 강력한 추진력, 뛰어난 상황판단력,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등으로 상당한 카리스마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방적인 자세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품위와 친화력을 갖췄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외교 소식통과 주변 사람의 말을 빌려 타밈이 다양한 방면에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며 신중하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 서방과 좋은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실용주의자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그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부친보다 훨씬 이슬람에 심취해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을 최고 가치에 두고 이집트에서 세속주의 독재세력을 무너뜨린 무슬림형제단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치세는 부왕 때보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타밈의 카타르가 현대화와 실용주의 노선을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타밈이 ‘상냥한 야심가’로 카타르의 국가 위상을 높일지, 이슬람과 현대화의 조화를 이뤄 중동 이슬람권에서 새로운 왕정국가의 모델을 만들지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상왕이 된 하마드가 계속 권력을 쥔 채 아들의 왕권을 굳건히 해주는 태종 이방원이 될지, 토사구팽이 된 리어왕이 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타밈은 2005년 6촌인 셰이카 자와헤르 빈트 하마드 빈 수하임 알사니와 결혼해 2남2녀를 두고 있다. 2009년에는 제2 부인을 얻었다. 그녀는 주요르단 대사를 지낸 관료의 딸인데 현재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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