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허위고소 여성 잇단 중형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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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윤모(32·여)씨는 지난해 9월 손님으로 찾아온 김모씨에게 마음이 끌렸다. 윤씨는 김씨를 따로 만나 성관계를 맺었다. 다음 날 오후 6시, 윤씨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애프터’를 신청했다. 윤씨는 김씨를 만나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곤 집에서 김씨와 성관계를 맺었다. 다음 날 오전 잠에서 깬 윤씨는 김씨에게 “나랑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하지만 김씨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난 너랑 연애하고 싶지, 결혼은 하기 싫은데….”

 화가 난 윤씨는 그날 저녁 경찰서로 가 “두 차례 강간당했다”며 김씨를 고소했다. 그러곤 사흘 뒤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난 원하는 게 없다. 자존심이 상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듬해 2월 갑자기 고소를 취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윤씨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이상호 판사는 윤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판사는 “강간범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고 있는 현실에서 무고한 사람이 강간죄로 고소당하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공포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 ‘피소 사실이 직장에 알려져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됐다. 내 인생은 이 사건 때문에 어긋났다. 윤씨를 엄벌해 달라’는 김씨의 탄원서도 덧붙였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이 과거보다 훨씬 세졌다. 반대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허위 고소한 혐의(무고)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도 법원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보통 집행유예를 선고하던 과거에 비해 훨씬 엄해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1월~올 6월 성폭행당했다며 허위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111명이다. 이 중 25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최근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뒤 남성이 연락을 끊자 성폭행당했다며 고소한 혐의(무고)로 기소된 김모(23·여)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300만원을 공탁했지만 실형을 면치 못했다. 재판부는 “ 피해자들이 김씨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지난해 10월 내연남 김모씨를 허위 고소한 혐의(무고)로 기소된 이모(43·여)씨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이씨는 1년 넘게 내연 관계를 맺은 데도 불구하고 “수차례 성폭행당했다. 나체 사진을 촬영해 남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했다”며 김씨를 허위 고소했다. 하지만 실제론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고, 나체 사진도 이씨가 김씨에게 자발적으로 보낸 것이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무고죄 양형 기준은 기본 징역 6월~2년이다. 가중 요소가 있을 땐 징역 1~4년으로 늘어난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한 무고는 기본 2~4년으로 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정상철 공보판사는 “최근 부부간에도 강간죄를 인정할 만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판결이 늘어난 만큼 성폭행 무고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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