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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밤하늘 닮은 전자음 들어 보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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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김민홍(왼쪽)과 송은지. 그들의 음악엔 꽃과 바람, 도시인이 살아가는 모습까지 ‘소규모식 자연’이 담겼다. [사진 파스텔뮤직]

결이 참 고운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이다. 김민홍(38)·송은지(34)로 이뤄진 혼성그룹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이하 ‘소규모’)가 정규 5집 ‘슬로 다이빙 테이블(slow diving table)’을 냈다. 앨범 속지에 각 곡마다 적힌 ‘소리’ 목록이 먼저 눈에 띈다. 스페이스 에코, 제주 중산간 까마귀와 밤의 풀벌레 소리, 종이 구겨지는 소리, 타자기 소리, 기타 앰프 노이즈로 만든 사운드….

 풀벌레 소리 따위가 음악에 삽입된 예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규모’는 강경덕(34)이 채집한 주변의 소음 혹은 소리를 음악화했다. 가령 ‘다가가다’에선 드럼 대신 기타 앰프 노이즈와 샘플러를 이용한 리듬을, 기타 연주 대신 기타의 샘플링 사운드를 썼다. 어쿠스틱 기타가 함께한 ‘사람’ 등 두어 곡을 제외하곤 모든 드럼·베이스·오르간 소리는 김민홍이 만든 것이다. 25일 서울 합정동 파스텔뮤직 사무실에서 김민홍을 먼저 만났다.

 “전기 노이즈를 샘플링해 음가를 매기고 변형한 소리입니다. 상품화된 드럼 소리가 아니라 제가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 거죠.”

 전자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작업했음에도 결과물은 독특하게도 자연을 닮았다. 이들이 작업한 장소인 제주도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다녀온 이야기’를 믹스할 땐 제주의 밤하늘을 레퍼런스(참고)로 삼았어요. 예전부터 시안 작업이라며 특정 음악을 레퍼런스로 놓고 작업하는 관행에 불만이 많았어요. 그건 일종의 카피(복사)니까요.”

 김민홍도 송은지도 도시인이다. 하지만 가끔 도시를 떠날 때마다 무척 시끄러운 곳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음악을 할 때면 시골로 향했다. 이번엔 1집(2004년)을 작업했던 제주도를 택했다. 소리를 채집한 강경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송은지가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너무 많은 마음을 가졌어/소리 없이 젖어든 잊음 멀리 잠든 사람에게 가네’(‘사람’)처럼 관조적이면서 시적인 가사를 쓰는 그다.

 그는 “소규모가 지금까지 같이 해왔던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는 음반”이라며 “더 많은 분들이 이런 아이들이 이런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피 론니 데이’는 2006년, ‘다녀온 이야기’는 2008년경, ‘지금’은 2010년, ‘순간’은 2011년 만든 곡이다. ‘소규모’의 한 시기를 증명하는 곡들이 차곡차곡 모여 하나의 앨범이 됐다.

 ‘소규모’는 다음달 6~7일 파스텔뮤직 스튜디오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연다. 울산·부산·대구·창원·대전·전주 등 전국 투어도 시작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저희가 스피커를 갖고 가서 공연할 데 없을까요”란 질문을 던지고 직접 섭외한 수십 석 규모의 온갖 장소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음악에 목말라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우주를 향해 ‘여기 생명체가 있소’란 신호를 보내듯….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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