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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력난에 전기도둑까지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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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박모(50)씨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전기계량기를 조작해 실제 사용량의 4분의 1만 납부했다. 계량기에 작은 구멍을 뚫은 뒤 나사못을 삽입해 전기 사용량을 표시하는 회전판을 멈추게 하는 수법을 썼다. 검침이 있을 때면 나사못을 슬쩍 빼놓고 정상인 것처럼 속였다. “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이라고 딴청까지 부렸다. 박씨가 5년 동안 내지 않은 전기요금은 6000만원에 달한다. 전남의 한 스포츠팀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를 선수단 숙소에 사용하다 적발돼 2억8000만원의 위약금을 물어냈다. 산업용 전기는 ㎾당(고압기준) 84.5원으로 113원인 일반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값싼 심야전기의 타임스위치를 조작해 낮에도 펑펑 사용하 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된 가운데 전기를 훔치는 ‘도전(盜電)’이나 원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계약종별위반(계약위반)’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전에 따르면 2008년 5656건이던 도전 및 계약위반 적발 건수는 지난해 1만1188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위약금 부과액은 46억5000만원에서 281억8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극심한 전력난이 우려되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까지만 4007건의 위반 사례가 적발돼 122억2000만원의 위약금이 부과됐다.

 한전 마케팅처 황성률 차장은 “고객의 월별 사용량을 조회해 의심자를 분별하는 ‘자동위약탐지시스템’을 가동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부정 사용자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런 도전 및 계약위반 행위가 한국전력공사 직원이나 검침원들에 의해서도 저질러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0~2012년 총 13건(9명)이 적발됐다. 이들은 적게는 12만8000원에서 최고 1280만원까지 내지 않았다. 수법도 다양하다. 충북 서청주의 한전 직원 A씨는 계량기 를 조작, 상대적으로 싼 심야전력으로 인식되도록 해 400만원이 넘는 요금을 내지 않았다. 전남 담양의 한전 직원 B씨는 10년 동안 집에서 전기를 쓰면서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대신 값이 싼 상업용 전기를 썼다. B씨는 이 기간 동안 100여 차례 검침을 받았으나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현재(새누리당) 의원은 “ 한전 직원이 면탈에 연루됐다는 건 모럴 해저드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런 판에 공사가 만들어 놓은 첨단 시스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권철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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