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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노무현식' 대북협상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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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읽어보면 하나의 반복되는 흐름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나름대로 여러 제안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서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일단 뒤로 빠지는 모습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이 오전 회의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에 대해 한참 설명한 뒤 회의 말미에 다시 “서해 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서해 문제도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더 이상 정상끼리 논할 것이 아니라 실무 국방장관 회담으로 넘기자는 의도였다. 노 대통령이 “내가 이것저것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오후 시간을 잡아달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오후에 일정이 괜찮겠어요”라고 했다가 곧 “뭘 더 얘기하지요. 기본적 얘기는 다 되지 않았어요”라고 거부 의사를 비쳤다. 그래도 노 대통령이 계속 오후 회담을 요구하자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했다”며 선심 쓰듯이 응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해답은 ‘노-김 정상회담’이 노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5개월 남짓 남았을 때 열렸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회의록에서도 물씬 풍겨나고 있지만 그토록 바라던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임기 마지막에야 개최된 데 대해 노 대통령이 ‘성과 강박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김 위원장에게 “나로서는 5년 동안 기다렸던 만남이고,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초조감에 불을 붙인 것은 북한의 협상술이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북한은 2007년 10월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오래전부터 노무현정부의 애를 태우는 전술을 구사했다고 한다. 그해 9월 말 사전 준비차 서울을 극비 방문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발언이 시작이었다. 그는 남측 당국자들에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인 합의를 보는 것보다는 두 정상이 덕담이나 하는 것으로 끝내자”고 제의했다. 우리 당국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한번 해본 소리’로 치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2일 남측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해서 북측의 태도를 점검한 결과 이는 ‘한번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 남측은 다음날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합의서 초안’을 전달했다. 여기에는 개성~신의주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한 40여 가지 합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이를 받아 본 김 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남측 대표단 숙소에 오더니 “내가 지난번 서울에서 그렇게 당부했는데 이게 뭡니까”라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입장을 보고받은 노 대통령도 “사진 찍으러 온 것은 아닌데…”라며 언짢아 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의 이런 소극성이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 감정상 의연하지 못한 언행을 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이번 사건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하나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북측 협상술의 장점 중의 하나는 ‘절대 통치자의 협상 행태에 토를 달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협상을 해도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남측에는 이런 ‘여유’가 구조적으로 없다. 그렇다고 남측이 뭔가 성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역사적 사례였다.

 북한이 회담 전부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합의서가 채택될 경우 남측의 이행 의지가 있는지를 떠본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정상회담 선언이 빈 구호가 됐다”느니 "새로운 공단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뒤로 빼는 북한을 좀 더 설득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해명이지만 ‘너희가 그렇다면 우리도 급할 것 없다’며 여유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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