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 변영태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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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석 변형태옹이 세상을 떠났다. 수년내 그의 온순한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연치마저 잊게했었다. 향년 77세.
일석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은 웃드리를 벗은채 아령을 들고있는 그 혈기 넘친 모습이다.
일석에겐 상록수의 푸르름을 생각하게 만드는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연륜은 어쩔수 없나보다. 그는 몇년째 아령을 밀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 그분이 뇌혈전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것은 그 청렴한 성격 탓이다. 일설에는 손수연탄을 갈아넣다가 그만 「개스」중독이 되었다고도 한다. 왕년의 재상이 아궁이에 머리를 들이대고 연탄을 갈아내고 있는 풍경은 여간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치사회의 무상과 비정을 상징하는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오로지 일석의 그 깐깐하고 깨끗한 생활신조탓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어딘지 그내면에는 차가운 미소가 엿보이는 것이다.
일석은 그 생애중 교단에서 보낸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그는「5분전 교수」로 너무도 유명했다. 강의 시작 종이 올리기 5분전이면 시계바늘처럼 강단에서 서성거렸다. 막 제시간이 되면 강의가 시작된다. 강의를 끝마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에누리가 없다. 그가 즐겨 사용하던 교훈으로는 『Boys, be ambitious!』(청년들아! 대망을 가지라)『뽀이스·삐·앰비시어스』라는 그 낭낭한 음성은 두고 두고 인상깊다.
그는 외국어는 무엇보다 암기가 제일이라는 주의였다. 중학교사일 당시 일석은 무조건 『리빙』(영어교과서명)을 딸딸 외게했다. 학기말 시험문제는 『제몇과를 외는대로 써라』-.
그는 안전면두날을 몇번 쓰고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 유리「컵」에 대고 그 날을 갈아 되쓰고 했었다. 한개의 수명은 무려 한달이나 된다.
말하자면 일석의 애국심은 허황한 과장도, 황당무계한 환상도 아니었다. 그는 순박하고사사로운일에 그런 신념을 쏟고 있었다. 만년에 그가 적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한 정치인으로서 무엇이 부족했던것은 결코 아니다. 이사회가 그의 신념과는 거리가멀었을뿐이다. 우리는 오늘, 실로 고전적이며, 청송같은 「옛어른」을 잃어버리는 고독감을 억누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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