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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 아이 제인'처럼 … 네이비실 여전사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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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97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제인’(리들리 스콧 감독)은 미 해군 정보장교 조던 오닐(데미 무어)의 네이비실 특전단 도전기를 그린다. 남자 도전자도 60% 이상 탈락하는 네이비실 선발 훈련을 여자 대원이 통과하면 3년 내 군의 모든 남녀 차별을 철폐한다는 조건에 끌린 것. 삭발한 데미 무어가 한 팔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근육질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영화는 갖은 음모와 정치 이해타산을 뚫고 오닐 중위가 당당히 삼지창 기장이 달린 네이비실 제복을 입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에선 어림없는 설정이었다. 미군은 76년부터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등에 여생도 입학을 허용했지만 남성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여군의 최전방 투입을 금기시해왔다. 94년엔 여군에 대해선 포병·보병·기갑병 등 전투병과에 배치하지 않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네이비실을 비롯해 레인저스·델타포스·그린베레 등 이른바 미 특수부대 ‘빅4’는 그중에서도 완고한 ‘금녀의 부대’였다.

 이 단단하던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다. 최근 미 국방부(펜타곤)가 밝힌 시간표에 따르면 각 부대는 여군에게 금지됐던 특수 병과의 육체·정신적 기준을 재평가해서 늦어도 2015년 9월까지 성 중립적인 안으로 제출해야 한다. 특수부대 레인저스의 경우 2015년 7월까지 기준안을 내기로 했다. 네이비실은 2016년 첫 선발 때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델타포스·그린베레는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만약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합당한 이유를 국방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미군은 밝혔다.

헤이글 “여군 전투 배치 … 람보 시대 끝나”

 이는 지난 1월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 여군에 대한 전투임무 배치 금지 규정을 없애겠다고 밝힌 데 이은 조치다. 패네타 장관은 미군 내 23만7000여 개의 일자리를 여성에게 공개함으로써 성차별 없이 승진 등의 기회 균등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미국은 1948년 미군에 첫 여군 정규직법이 통과된 뒤 75년 공군이 처음으로 여성조종사를 배치했다. 2011년 기준 여군은 전체 미군 140만 명의 14.5%인 20만30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만4000명은 해병대 소속이다.

 미군의 변화는 현대전이 직접적인 체력 위주의 전투전보다 정보 분석 등 두뇌싸움의 성격을 띠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미군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척 헤이글 국방장관 명의로 여군의 전투 배치 계획을 발표하면서 “람보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국방부 인사담당국장 줄리언 베일러는 “여성 전투 배치의 성패는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만큼 훈련할 시간이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군 안에서 여군의 활동 폭은 급격히 확대됐다. 전선이 불분명한 게릴라전이 성행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전 등에서 여군은 이름만 전투병이 아닐 뿐 전투부대에 ‘수행하는’ 역할을 해왔다. 두 전쟁에서 미군의 총 사망자 6700명 가운데 150명이 여성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계획이 미군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 점이다. 여성을 일선 전투병에서 제외한 것이 군내 성 장벽을 만들고 여군을 2류 인간처럼 하대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인식이다. 지난 1월 회견에서 뎀프시 합참의장은 “인간을 평등하게 다룰수록 서로 평등하게 대하게 된다”며 여군 차별 폐지가 군내 성폭력 대책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군에서 성폭력은 심각한 이슈다. 2011년 조사에서 여군 20%가 원치 않는 성 접촉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만 2만6000건의 군내 성폭력이 발생했다. 여군 숫자가 늘어가는 현실에서 성폭력 대책으로 여군을 뽑지 않는 소극적 방법이 아니라 여군의 동등한 지위를 추구하는 적극적 발상을 택한 셈이다.

동등한 지위 주면 군내 성폭력 없어질 것

 여군은 오랫동안 전투병 배속을 요구해 왔다. 지난해 12월엔 이라크 및 아프간전에 참전했던 전·현직 여군 4명이 전투 현장 배제 규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성별 때문에 전투 현장에서 제외되는 정책은 헌법에 어긋나며 또 이로 인해 여군들은 진급에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미군의 정책 전환은 여성계에서 환영받고 있다. 크리스텐 길리브랜드(민주당) 뉴욕주 상원의원은 “전투 여군을 공인하는 것이 미국을 도덕적·군사적으로 강화시킬 것”이라며 군사 리더십 다양화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남성도 소화하기 힘든 고강도 선발훈련을 여성이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네이비실의 경우 전군에서 추천된 엘리트 군인들이 8주간의 기초훈련과 24주의 수중파괴훈련, 28주간의 적성훈련 등 총 30개월에 걸친 특수훈련을 받는다. 남성도 이 과정에서 지원자의 60~80%가 탈락한다. 실제로 해병대의 경우 여성이 도전했다가 쓴물만 삼켰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2명이 악명 높은 보병장교과정(IOC)에 입소했지만 13주를 채우지 못하고 2주 만에 자진 퇴소했다.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사령관은 “IOC 교육과정에서 어떤 것도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자도 60% 탈락하는데 견딜까” 시각도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특수부대의 기준을 완화해선 안 된다는 원칙론도 있다. 하지만 군은 특정 전투병과의 경우 체력 전반보다는 일부 능력만 갖춰도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본다. 어느 기준선을 통과할 경우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례로 해병대의 경우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새 규정에서 지원 자격은 ‘턱걸이 3번 이상’으로 남녀 구분이 없다. 대신 남성은 턱걸이를 20번 이상 해야 체력검사에서 만점을 받지만 여성은 8개만 해도 만점으로 처리한다.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네이비실은 지원 자격에서 500야드(약 457m)를 9~12분30초에 헤엄칠 것을 요구하지만 그 폭이 크다. 팔굽혀펴기도 50~90개 사이로 돼 있어 차이가 배에 달한다. 여군들은 남녀 차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정확한 기준을 제시한다면 여군도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여군의 최전방 배치를 허용하는 방안에 찬성하겠다고 답해 반대 의견(20%)을 크게 앞질렀다.

강혜란·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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