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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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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는 「비극의 땅」 에 살고있다고들 말한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실로 편린 (편린)처럼 매달린 반도의 나라.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고달프고, 지친 눈물의 그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비극은 숙명적이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드센 이웃들의 눈초리는 우리의 성격조차 「반도적」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숨 짓는다. 남달리 고난과 한탄과 서글픔 속에서 살아온 것도 같다.
열등감-. 그렇다. 우리는 너무 사대주의적이라고 서로들 자조한다. 약소국의 비애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조의 저 넌더리나는 당쟁을 좀 보라고 발을 구르는 사람도 있다. 불과 2세기 사이에 2백50여개의 당파가 옥신각신 했다던가. 가까운 역사릍 상기하려는 사람도 있다. 건국이래 바람처럼 생겼다가 거품처럼 사라진 정당은 얼마나 많았는가. 체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민족성은 그렇게 되어 먹은 것이라고.
그러나 오늘, 한숨과 체념과 눈물을 거두자.『죽은 땅에서「라일락」뿌리가 흔들리듯』(T·S·엘리어트=영시인) 눈을 뜨자. 그리고 역사의 한「페이지」한「페이지」들을 무겁게 넘겨 보자. 혼미속에서 어서 눈을 뜨자.
우리에게「식민지적」사고방식을 불어 넣어준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왜 우리는 역사의 어두운 부분만 과장하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를 숙명적인 고아로 생각하는가.
『민족적 단결이 공고했을때 우리는 무력의 열세만으로 사대주의의 굴욕을 짊어진적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동양사를 펴 보라. 중국 송대의 역사에는 우리보다 몇배나 더 소란한 당쟁의 핏자국을 볼수 있다. 유독 우리의 역사만 당파성이 두드러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연약한 양반귀족의 자기 보존적인 사대의식을 왜 우리의 민족성과 얼버무리려는가.
우리의 역사를 보는 의식은 왜 자멸적이며 감상적이고 체념적이며 그렇게 왜곡되어 있는가.
50년전 그 어기찬 만세소리를 상기하는가. 그 목맺히는 함성을 듣는가.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본어용학자들의 여독사상을, 그 식민지적 의식을, 그런 부질없은 사관을 털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그 눈부신, 가슴이 메이는 만세소리로부터 서장이 쓰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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