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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교육의 공공성|이인기<서울대 대학원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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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립학교에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에 간혹 귀에 흘러 드는 말이 있다. 어떤 경영자의 말이라면서, 『이렇게 시끄러울바에는차라리 폐업계를내고 말겠다』하더라는것이다. 물론 사석의 농담이겠지만 그 언사가운데 교육의 공공성에관한 심한인식부족이 곁들여있는것만은 인정하지 않을수없다.
근대국가에 있어서 교육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직접 간접으로 국가적인 공공사업이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래야만 국민된 자는 골고루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아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고 그 능력이 집결되어서 국가 자체의 발전을 기대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있어서는 그 상식이 반드시 그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소위 선진국이라하여 예외는 아니다. 다만 위에제시한 발언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사고방식으로 이야깃거리가 될따름이다.
교육은 긴 역사를 통해서 개인의 사사로운 일로 관념되어 왔고 학교도 그러한 관념아래 발달한것이다. 그 관념을 국가적인 견지에로 전환시키면서 학교의 성격을 공공적인 것으로 바꿔놓으려는 노력이 근대국가에의해서 경주되어온것이다.
그것은 전래의 교육관에 대한 도전인 만큼, 국가는 새로운 이념에 입각한학교를 그 스스로가만들어가는 동시에 기존의 사립학교를 새 이념에맞도록 간섭하고 통제함으로써 국민교육의 일익을 담당할수있도록 하자는것이다. 서양의근대교육사는 말하자면 국가의 교육간섭사라 해서 무방할것이다.
그 국가 간섭의 방식은 나라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통제의 정도와 방향을 중심으로 굳이 말한다면 적극형과 소극형의 두가지로 구별할수있다. 전자를 독불형이라면 후자는 영미형이다.
적극형에 있어서는 국가 스스로가 교육의 이념을 세우고 행정적 집권제를 채택하는 것이며 소극형에 있어서는 그러한 통제를 아니하는 대신에 교육의 기회균등에관심을 집중한다.사학에 대해서는 각자의 건학이념을 존중하여 자유방임주의를 쓰지만, 그렇다고 글자 그대로 국가가 국민교육을 팔짱끼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간접적인 통제를 하는것이다.
1세기전 영국에서 기존사립의 국민학교가 없는 가난한 지방에 학교를 세우기 시작한 공립초등교육의 유래는 그러한 정책의 단적인 표현이다. 고등교육이면 으레 몇몇의 명문사립대학의 독단장으로만 알려져온 미국에서도 요즘와서는 주립대학들이 그 풍부한 재정력과 우수한 교수진으로 구형대학을 능가해가고 있다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솔직이말해서 자유와 통제의 사이를 무궤도하게 줄달음쳐 왔다고 하는것이 타당할것이다.
국가의 재정이 빈약하니 행정력만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입장을 바꿔가면서 노출된 사태에 대처하였고, 또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다고도 하겠다. 그래서 일관성없는 교육정책이 비난의 도마위에 오른지도 이미 오래다. 이러한 허점을 타서 시대착오의 관념적인 입신주의자들과 이념없는 학교기업자가 야합하여 오늘날 보는바와같은 사학의 난맥상을 빚어낸것이다. 그것은 지금20수년 동안에 누적된 교육악이라고도 할수있을 것이다.
요즈음 크게 말썽된 사대감사파동도 그절차를 에워싼 소음에 귀를 일단막는다면 알맹이는 국민의 낡은 상식에 아무것도 보탤것이 없어 보인다. 감사의 국가·사회적의의를 찾는다면 이 기회에 학교 경영자나 국민이 다함께 국민교육의 공공성을 재확인하고 그터전위에 움직임없는 교육정책을 세웠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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